사진작가의 스튜디오라고 했을 때 세련되고 말끔한 분위기, 반짝이는 최신 장비들, 도시적 차가움 등을 떠올리는 것은 편견이자 선입견에 불과했다. 성남시 분당구의 대로에서 조금 벗어나 구불구불 샛길을 따라 올라간 이매동 작업실. 집 못 찾을까 나와 섰던 사진작가 구본창(65)이 나긋한 웃음으로 맞으며 활짝 열어준 그의 작업실은, 작업실이라기보다 박물관에 가까웠다. 오래된 선풍기와 닳고 닳은 지구본, 녹슬고 묵직한 열쇠뭉치, 낡은 인형과 장갑…. 잘 뒤지면 어디선가 고물장수의 바스라질 듯한 가위라도 나올 듯하다. ‘탈바가지’ 취급을 받던 한국 탈을 문화 정체성 깃든 독창적 미감의 사진으로 선보여 재조명받게 한 구본창이다. 백자가 가진 여백, 비정형과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비춰 백자를 감상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새롭게 선보인 그다. 별스럽지 않은 것들에서 별난 가치를 찾아내는 그만의 소중한 시선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삶 곳곳에서 모으고 쌓은 물건들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새롭게 준비해온 ‘청화백자’와 ‘제기’ 연작을 본격적으로 처음 선보이는 국제갤러리 부산점의 개인전을 앞두고 분주한 그를 서울경제신문이 만났다.
“남들이 애정을 갖지 않는 것에 더 큰 애정을 쏟는 일은, 더듬어보니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평범한 것이지만 손때 묻은 것, 애정과 정성을 기울인 물건에는 드러내지 않는 힘과 매력이 있거든요. 사용하지 않고 눌려진 채 상자에 있던 저 장갑은 코닥 본사가 있는 미국 로체스터의 벼룩시장에서 샀어요. 체온과 묘한 경험이 느껴졌거든요. 대만의 벼룩시장에서 본 작은 책꽂이 선반은 안 판다길래 그냥 왔는데 자꾸만 생각이 나 다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 사온 물건입니다. 값어치보다 중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데, 저 안에 뭘 놓고 어떻게 찍을까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내가 구하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사라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이런 물건을 보존하는 이유는, 어쩌면 희망 같아요.”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작가로서 그가 가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의 눈에 들면 단숨에 작품이 된다. 탈이 그랬고, 비누가 그랬다. 매일 아침 세수하고 저녁마다 손 씻으며 작고 얇아진 비누쪼가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게 명작이 됐다. 때 묻어 갈라진 하얀 비누에서 영롱한 진주 빛을 발견하고 초록과 분홍의 비누에서 에메랄드 같고 수정 같은 영롱함을 찾아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구본창 자신이 그런 존재였다. 3남3녀 중 차남으로 무난하고 평범하며 맡은 일을 깔끔하게 잘 해내던 그였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당시 국내 최고 기업인 대우실업에 입사한 그가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이렇게 평생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과 ‘독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던 차에 작은 회사로 옮겨 독일주재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사진 전공의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모범생·엘리트로 살아온 그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고, 다양한 공부와 경험 끝에 그의 관심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되돌아왔다. 특히 말 못하는, 오래된 물건의 아름다움에 관해.
“탈도 못다 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죠. 하층계급 사람들이 평소 입 밖으로 못 내던 말을 가면 쓴 그날만큼은 실컷 풀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강릉 관노가면극이나 가산오광대는 안동 하회탈이나 봉산탈춤에 비해 덜 알려진 덕에 옛맛·손맛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영혼이 깃든 사진들이 나올 수 있었죠.”
그 결과 이전까지는 한국적 관광상품의 대명사이던 탈에 한국적 정서가 담기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 찍기 시작한 백자도 마찬가지다. 한 외국인 여성이 커다란 백자 달항아리 옆에 앉아 있는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본 뒤로 “그 백자가 먼 이국땅에서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후 세계 유수의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백자 컬렉션을 촬영해왔다. “화려한 청자에 비해 백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김환기·도상봉 정도를 제외하면 백자를 다루는 작가도, 전시도 많지 않았죠. 백자를 보고 첫눈에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만큼, 눈여겨보지 않은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3년여간 5개국, 16개 박물관을 다니며 한국 백자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람의 볼을 어루만지고 숨결을 느끼며 그린 초상화처럼 그의 백자는 살아 있는 듯하다. 초현실주의 사진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백자를 새롭게 발굴했다. 규방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살았던 여성의 살색을 닮은 핑크톤의 작품,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흑백사진은 한국의 미(美)로 특히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연중 거의 항상 외국 어딘가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그의 전시가 열리는 이유다.
그러다 청화백자에 다다랐다.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푸른 빛에 물들다’라는 전시를 계기로 조선 청화백자가 구본창의 눈에 들어왔다. 청색을 내는 푸른 안료가 고가의 수입품이었기에 초창기 청화백자는 왕실의 전유물이었다. 차츰 수요층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도공과 화공은 귀한 재료를 다루는 일이라 긴장해야 했다. “우리 청화백자에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압도적이고 정교한 중국 청화백자, 조형적이고 세밀한 일본 청화백자와는 또 다른 떨림이 있죠. 귀한 안료를 아껴 쓰려는 조심스러움이었던지 떨리던 화공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파란색이 옅고 여백이 많아요. 다른 나라 같았으면 색을 칠하다 망친 것은 깨버렸을테지만 우리는 칠하다 그만둔 것도 멋으로 남았습니다. 그 귀히여김과 조심스러움에서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상황과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죠.”
버려진 시간, 오래된 가치에 감복하는 작가는 사라져가는 애틋한 것에 대한 관심을 불완전한 대상에 대한 친근함으로 키우고 인간 보편의 감정을 읽어내는 삶의 통찰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또 꿈을 꾼다. “나중에는 목기를 찍고 싶어요. 소반은 찍은 적이 있지만 단출한 목기를 세계에 내놓을 만큼 멋지게 찍고 싶어 유심히 보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황금 유물들을 찍고 있습니다. 황금은 어떻게 비슷한 시기에 멀리 떨어진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을 다 홀리게 된 걸까요. 청동기 때부터 여러 형태로 사용된 그 황금문명이 궁금했는데, 국내 박물관은 신중한 편이라 신라 유물을 아직 못 찍은 채 남미의 박물관에서 먼저 찍었고, 호주의 금광지역, 리마·페루를 거쳐 마드리드의 고고학박물관 등지에서 황금유물을 촬영할 예정입니다.”
황금도 구본창이 찍으니 화려한 반짝임보다 세공과정의 두드림이 더 잘 보인다. 다들 귀하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보잘것없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것,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구본창의 집념과도 닮았다.
/성남=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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