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선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인이 새해가 되면 평균적으로 가장 많이 결심하는 세가지 사항이 있다. 돈 벌기, 다이어트, 영어공부이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다. 습관처럼 결심은 하지만 실행은 항상 내일부터이다. 영어공부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입으로 말하는 연습에 집중해야 하고, 다이어트는 덜 먹고 더 움직이는게 핵심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사항에서 돈 버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어공부나 다이어트만큼 간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대다수 한국인의 새해 소원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며, 많은 사람이 한 달도 못돼 새해 다짐을 포기한다는 한국의 특이한 현상을 소개한 적도 있다.
국가별, 개인별 위시리스트의 순위는 차이가 있겠으나 누구나 돈이 지금보다 많기를 바란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원하면서도 돈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돈도 자세히 봐야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할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나 자신이다.
머니 카운슬러 다구치 도모타카의 재테크 서적에서 ‘웃픈’ 일화를 소개한 것이 있다. ‘2030의 경제관념’에 대한 얘기다. 외식비 아끼겠다고 마트 가서 외식비보다 더 비싸게 장 보는 일, 쇼핑봉투 20원 추가는 아까워하면서 계산대 근처 군것질거리는 꼭 하나씩 집는 것, 버스 환승 태크 안하면 그렇게 아까워하면서 술 먹고 야간 할증 택시는 잘 타는 것 등이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판단해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충동에 따라 물건을 구매하면서 이를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충동적 행동은 소비뿐만 아니라 돈을 모으거나 불리는 방식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매달 불입한 적금을 만기 전에 깨거나 장기보험을 중간에 해지하는 일이다. 투자의 경우 손실을 겪게 되면 자포자기로 손실을 방치해 더 큰 손실로 이어지게 하거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투자금액을 더욱 늘려 방치한 것보다 손실액이 더 커지는 경우도 겪게 된다. 이는 모두 돈을 대하는 철학과 원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돈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은 돈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다. 이는 나무를 세는 작업이 아닌 숲 전체를 가늠해보는 작업이다. 얼마 전 종영한 ‘거기가 어딘데’라는 예능에서 40km의 아라비아 사막을 나흘 만에 도보 횡단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출연자들은 지도로 목표지점을 확인한 후 어느 길로 갈지,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할지 결정했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10km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날씨와 체력에 따라 걷는 전략을 중간 중간 변경하기도 했다.
돈에 대한 목표와 벌기 위한 여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올해, 혹은 내년의 돈 벌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가늠해보고 돈 버는 기간의 끝은 언제인지, 사용하는 끝은 언제인지, 전체 규모는 얼마 정도여야 하는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후의 나의 처지는 어떻게 될 것인지 체크해야 한다. 이것을 보통 생애자산관리 또는 재무설계라 얘기한다.
목표를 세우면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본인에 형편과 관심사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에게 맞는 돈 벌기 방법은 무엇인지, 가장 집중해서 돈 벌어야 하는 시기는 언제인지는 목표 설정 다음이다.
돈에 대한 철학을 만든다는 것은 돈을 내가 통제한다는 의지이다. 내가 통제하느냐, 돈에 휘둘리느냐의 문제이다. 황금 돼지해인 기해년이 원대한 나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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