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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침해 땐 최대 3배 '징벌적 손배'...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는다

'개정 특허법·부정경쟁 방지법' 내년 7월 시행

세계4위 'IP강국' 명성 불구

중기 영업비밀·기술탈취 등

산업현장 불공정 행위 빈번

"기업 지식재산 보호에 경종

특허침해 관행 바꿔나갈 것"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A사는 독자적인 기술로 거래처의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했다. 거래처 본사에 상주하며 시스템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던 A사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거래처가 결재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발주한 신규 사업에서 자신들의 경쟁사를 선정한 것. 게다가 거래처는 A사가 특허로 등록한 전자결재 시스템의 소스 코드를 사전 동의 없이 복제프로그램을 통해 탈취해 경쟁사에게 넘겼다. A사는 기술경쟁력 손실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지만 당장 일감이 끊길 걱정에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도서 및 교재 교구 판매업체 B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던 김주원(가명) 씨와 박정후(가명) 씨는 시차를 두고 나란히 퇴사했다. 김 씨는 아동도서 전문점 C사를 설립했고 뒤이어 박 씨가 합류했다. 박 씨는 김 씨와 공모해 B사에서 관리했던 고객 정보를 몰래 빼내 C사의 영업 활동에 사용했다. B사는 뒤늦게 이를 눈치채고 영업비밀인 고객 정보를 무단 유출했다며 두 사람을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C사의 영업비밀 침해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1,000만원만 손해배상액으로 B사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B사 대표는 “수십 년 고객들과 만나면서 쌓아온 정보를 한 순간에 빼앗겼는데 법원은 청구액의 10%만 인용하더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고객들을 확보하라고 이야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세계 4위의 지식재산(IP) 강국이란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현장에선 여전히 특허·영업비밀을 침해하거나 기술을 탈취하는 불공정한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허 출원 숫자로는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지식재산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법·제도 미비로 지식재산 보호 부문에선 약소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특허·영업비밀 등 지식재산에 대해 제 값을 정당하게 지불하기보다 침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적발되면 배상액을 지급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피해를 입은 쪽이 개인이나 중소기업일 경우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고, 설사 이기더라도 확정판결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걸리고 손해배상액도 충분치 않아 소송을 접는 경우가 대부분. 지식재산 침해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특허청이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특허침해소송 1심(174건)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의 중간값은 6,000만원으로 미국의 손해배상액 중간값(1997~2016년) 65억7,000만원 대비 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양국의 경제 규모(GDP)를 고려해도 9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특허침해소송의 1심 선고일까지 걸린 평균 소요 기간은 644.7일이었으며 상급심 판결·화해 권고·조정성립 등으로 사건이 최종 확정되는 데까지는 무려 705.4일이 걸렸다. 소송으로 가기도 어렵지만, 막상 소송을 시작해도 특허 침해 피해기업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그동안 이뤄지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허법’ 및 ‘부정 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경법)’ 일부 개정안은 그래서 더욱 주목받는다. 중소기업에게 불리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핵심은 영업비밀 및 특허권·전용실시권의 침해행위가 고의적인 경우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손해배상액을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손해액 증액 시 △침해자의 우월적 지위여부 △고의의 정도 △침해의 기간·횟수 △침해로 인한 피해정도 등 총 8가지를 고려한다. 특허청 관계자는 “그동안 특허법·부경법 등 특허 관련 법률에 손해배상 증액과 관련된 조항이 없었던 것이 지식재산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액이 낮았던 이유 중 하나로 꼽혀왔다”면서 “이번 개정안 통과로 기업들이 지식재산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지난 9월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 501곳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45%가 ‘징벌배상’을 중소기업 기술탈취 예방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최우선 정책으로 꼽았다.

이번 개정안에는 징벌배상 외에도 특허소송에서 특허권자 등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기 위한 △구체적 행위태양 제시 의무 △영업비밀 인정요건 완화 △영업비밀 침해행위 유형 확대 △처벌수위 상향 및 예비·음모범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지식재산 보호 제도를 재정비했다. 특허법 상 손해액 산정 시 통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합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변경해 손해액 산정범위 확대 기반도 마련했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이번 법 개정으로 지식재산 보호가 강화됨에 따라 사회적 문제인 중소기업 기술탈취행위가 상당히 근절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서 혁신성장 및 공정경제가 빠르게 실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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