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56·가명)씨는 최근 KEB하나은행이 제작한 예술 달력을 보고 감명을 받아 주거래은행을 하나은행으로 바꿨다. 하나금융그룹은 장애인 예술을 후원하기 위해 자폐성 장애작가 5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 이들 작품이 수록된 달력을 제작했다. 이씨는 “날짜만 가득 차있는 달력은 걸려 있어도 잘 눈길이 가지 않는데 예술작품이 실린 달력은 나도 모르게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달력을 통한 이색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연말을 기념해 고객에 대한 감사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개별 은행의 색깔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 달력에 대한 꾸준한 수요 덕에 지점은 연말만 되면 달력을 찾는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집에 걸어두면 재물이 쌓인다는 속설 때문에 은행 달력을 한 번에 여러 개 받으려는 중장년층 고객도 많아 직원들이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은행들은 달력이 동날 것을 우려해 고객의 계좌번호를 확인한 뒤 1인당 한 부씩만 달력을 제공할 정도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연말만 되면 거래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달력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달력도 일종의 마케팅 수단인데 제작 비용을 고려하면 무턱대고 주기는 어렵다”고 푸념했다.
KB국민은행은 반려동물 고객을 겨냥해 ‘마이펫 캘린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프라이빗뱅킹(PB) ‘골드&와이즈’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반려동물을 캐릭터로 만들어 액자형 달력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황금돼지해를 앞두고 돼지를 콘셉트로 잡아 달력을 구성했다. 각 달의 특징에 맞는 그림에 모두 돼지를 등장시켜 재미를 더한 것이 눈에 띈다. 우리은행은 내년이 창립 120주년인 것에 초점을 맞춰 그동안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사진을 실었다. 특히 1월 사진에는 지난 1899년 고종황제가 마련한 민족자본으로 우리은행의 첫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탄생했음을 증명하는 창립청원서 및 인가서가 담겼다. 아울러 1909년 건립된 국내 은행 최초의 근대 건축물로 서울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종로금융센터는 물론 1899년 설립된 최초의 영업점인 인천지점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점포 13곳을 달력에 담아냈다.
이 같은 전략 속에 은행들은 내년도 발행 부수를 소폭 늘렸다.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제작한 내년도 달력 부수는 총 762만3,000부로 올해보다 0.8% 늘었다. 2018년도 달력 부수의 경우 전년 대비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부수 규모가 확대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비용 절감을 위해 달력 제작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는 것도 은행으로 몰리는 데 따른 영향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스마트폰 활용이 높아지며 달력의 쓰임새가 줄어든다는 판단에 따라 달력을 제작하지 않는 은행도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9년도 고객 배포용 달력과 다이어리를 제작하는 대신 제작 비용 일부를 환경보호에 기부하기로 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사용한 일정 관리에 익숙해진 고객의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지난해부터 달력과 다이어리를 제작하지 않는 대신 환경보호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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