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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살아남은 달력…몸값 비싸졌다

공짜 이미지 벗고 좋은 종이에 꽃단장

카카오·네이버 자사 캐릭터 담아 홍보

한화 19년째 시각장애인용 달력 제작

기업 판촉물서 사회공헌 통로로 활용





경기도 판교에 사는 20대 직장인 이지승씨는 이달 초 현대백화점 카카오프렌즈샵에 들러 내년 달력 15부를 구입했다. 한 개에 6,000원씩 총 9만원. 달력 값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이씨는 “연말에 계속될 송년회 선물로 인기 만점”이라며 “1년 내내 볼 달력인데 칙칙한 무료 달력을 책상에 놓기는 싫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뿌리는’ 판촉물로 여겨졌던 달력이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일정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이 일상화되면서 달력 수요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살아남은’ 달력들은 고급화 경향이 확연하다. 한 정보기술(IT) 기업의 사회공헌팀 직원은 “대부분의 기업이 달력 발행을 줄이는 분위기지만 ‘살아남은 놈’은 돈까지 받는 상품으로 몸값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카카오뿐 아니라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의 캐릭터 ‘라인 프렌즈’를 활용한 달력은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1만원을 주고 사야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무료로 배포할 달력을 준비하기는 한다. 그러나 임직원을 위한 소량에 그친다. 카카오 관계자는 “직원용 부수가 많지 않아 외부에 돌리기는 어려운 수량”이라고 말했다.

KT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탁상형·벽걸이형 등 다양한 달력을 제작해 고객·거래처에 배포했지만 최근에는 직원 대상으로만 제작한다. 수가 적어진 만큼 역시 고급화됐다. 종이의 질이 더 높아진데다 프랑스 유명 비주얼 아티스트 장 쥘리앵의 삽화를 넣어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 LG유플러스가 제작한 달력 역시 직원용이다. LG유플러스는 달력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여준다고 보고 발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부수는 확연히 줄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직원 1인당 2~3개도 신청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1인 1개로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고유의 정체성을 달력에 각인시키는 경우도 있다. KOTRA가 대표적이다. KOTRA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소·중견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는 공기업. KOTRA는 내년 달력에 10개 해외 지역본부에서 꼽은 해당 지역 명소들의 사진을 넣었다. 중국 황산(중국 지역본부), 독일 쾰른 대성당(유럽 지역본부), 미국 그랜드캐니언(북미 지역본부), 이집트 피라미드(중동 지역본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산(아프리카 지역본부), 일본 오사카성(일본 지역본부), 미얀마 슈웨다곤 파고다(동남아대양주 지역본부), 인도 카주라호(서남아 지역본부), 마추픽추(중남미 지역본부), 러시아 상트바실리 대성당(CIS 지역본부) 등이 10개 달에 각각 배치됐다. 12개 달 중 남은 2개 달에는 서울 경복궁과 KOTRA 본사의 이미지를 넣었다. 특히 KOTRA의 창립기념일(6월21일)을 기념하기 위해 본사 사진은 6월에 들어갔다.



달력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업도 있다. 한화그룹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달력을 매년 5만부씩 발행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19년째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지금까지 제작한 점자 달력을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산 높이(8,848m)와 맞먹는다”며 “점자 손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자 전문 출판·인쇄 사회적 기업과 함께 제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벽걸이형보다는 그나마 탁상용 달력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요즘 벽에 못을 박아 달력을 거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 실제 신한은행의 경우 2018년 달력 중 벽걸이는 55만부, 탁상용은 78만5,000부를 제작했지만 2019년 달력은 벽걸이가 53만부로 줄어든 반면 탁상용은 82만부로 오히려 늘었다. 한화그룹도 탁상용은 2018년보다 내년 달력을 10% 더 찍었지만 벽걸이형은 4% 줄였다. 한화 관계자는 “임직원 수요 조사 결과에 따라 부수를 결정하는데 선호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력이 줄어드는 사회 분위기와는 ‘딴판’인 기업들도 있다. 일선 병·의원과 약국을 상대로 한 영업이 외국계 제약사에 비해 중요한 국내 제약사들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오히려 전통적 방식의 달력이 예전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진료 일정을 잡기 위해서는 전달과 다음 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3단 달력’이 편리하다는 게 병·의원들의 얘기다. JW중외제약은 3년 전 장기적인 진료 계획을 세우고 싶어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3개월이 아니라 5개월을 표시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꾸기까지 했다. 탁상달력 수요도 꾸준하다. 유한양행은 20년 넘게 3단 달력만 제작해왔지만 병·의원과 약국의 요청에 따라 3년여 전부터는 탁상달력도 함께 만들고 있다.

의사와 약사의 선택이 매출을 좌우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도 달력은 중요하다. 이들이 1년 내내 보는 달력을 자사의 로고나 의약품이 그려진 것으로 두게 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달력 제작은 제약사 마케팅 부서의 핵심 업무 중 하나일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렇다 보니 병·의원과 약국의 달력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까지 벌어진다. 먼저 걸어놓은 달력이 있으면 다른 달력은 필요성이 크게 줄어드는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달력을 병·의원과 약국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JW중외제약은 제약업계에서 가장 먼저 달력을 찍어 배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빠를 때는 10월 초에 달력을 배포하기도 한다. 이 회사는 수요 확대에 따라 3년 전 5만부 수준이던 제작 부수를 올해 7만부로 늘렸다.
/박한신·강동효·양사록 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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