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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영의 해외경매이야기]수많은 점 잔잔하면서 강한 울림...가장 비싼 한국현대미술작가로

1,000만弗시대 기대되는 김환기

고국 그리움·우주적 윤회 담아

많은 인연들 하나하나 점으로 표현

수준높은 서정 추상의 세계 열어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 거장으로

中미술관 내년3월초까지 전시회

새해 1,000만弗이상 거래 기대

지난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85억원에 낙찰돼 가장 비싸게 거래된 한국 현대미술품 자리에 오른 김환기의 1972년작 ‘3-Ⅱ-72 #220’ /사진제공=서울옥션




1972년 2월 3일 뉴욕. 수화 김환기(1913~1974)는 며칠 전 나무에 광목 천을 매어두었던 세로 254cm, 가로 202c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에 점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 찍어나간 붉은색 점들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상단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푸른 색 점들이 자리잡고 있는 구성인데, 동일한 색 물감을 사용하였음에도 점 하나하나는 결코 동일하지 않은 색감으로 변화를 주는 특유의 리듬감 속에서 가까이 보면 각각의 점들은 물감이 천에 스며들어 번져나가는 자연스러운 발색을 보여주며 멀리서는 무수한 점들이 어우러져 잔잔하면서도 강한 울림이 전해진다. 이렇게 제작된 그의 1972년 작품 ‘3-Ⅱ-72 #220’은 지난 5월 서울옥션(063170) 홍콩경매에서 약 85억원(6,200만 홍콩달러·수수료 미포함)에 낙찰되면서 지난 2017년 4월 케이옥션에서 또 다른 김환기의 작품 ‘고요 5-Ⅳ-73 #310’가 65억5,000만원을 경신하고 현재 가장 비싸게 거래된 한국 현대미술 작품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한국적 미감의 세계화와 서구 모더니즘의 한국화를 주도하고 초기 추상미술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는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남도의 조그만 섬마을에서 푸른 바다와 넓은 밤하늘을 보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소년 김환기는 부농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1933년부터는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귀국해서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곧 일어난 전쟁으로 위축된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느껴 1956년부터 1959년까지를 파리에서 보내게 된다. 이 때부터 그는 매화와 항아리, 십장생 등 한국적 모티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추상적인 정물화 작업과 푸른 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는데, 그에게 푸른 색은 고국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고향의 색이자 하늘을 동경하던 자신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이후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가해 회화부문 명예상 수상하고 바로 뉴욕으로 건너가 11년간의 뉴욕 시기를 시작한다.

지난 2017년 4월 65억5,000만원에 낙찰돼 당시 한국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의 ‘고요 5-Ⅳ-73 #310’ /사진제공=케이옥션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수많은 인연들을 하나하나 점으로 새겨 넣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우주적 윤회를 담아낸 그의 점화는 이렇게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렇게 그려진 대형 점화들로 그는 1971년 9월 뉴욕 포인덱스터 갤러리(Poindexter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뉴욕 타임즈와 아트뉴스 등의 매체에 연이어 호평이 실린다. 서울에서도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성공적으로 열리면서 김환기는 뉴욕 생활 8년만에 마침내 큰 희망과 기쁨 속에서 1972년을 맞았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본 뉴욕 화단 관계자와 평론가들은 ‘수준 높은 서정추상의 세계’라고 평가했고 그가 쓰는 색감의 우아함과 작품이 뿜어내는 수준 높은 미감의 정신적이고 우주적인 에너지를 극찬했다. 60세가 된 김환기는 고국이 그리웠지만 이제 시작된 뉴욕 화단에서의 관심과 호평을 바탕으로 얼마간 더 뉴욕에서 작업하며 그림을 그리겠다 의지를 다지면서 이 작품을 그렸다. 1970년에서 1972년까지 주로 제작된 점화 대작들은 면적인 구성을 보이고 1973년부터는 선적인 구성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이 시기의 대표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로 푸른 색조의 다른 전면 점화들과는 차별화된 진홍색, 그리고 상단의 푸른 색 삼각형 면의 구성을 사용해 색감과 구성에 있어 희소성을 띤다.

지난 10월 홍콩경매에서 약 33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27-XI-71 #211’ /사진제공=서울옥션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서울옥션은 올 한 해 낙찰가 기준 톱10 작품들을 발표했다. 전체적으로는 해외 작품 3점, 국내 작품 7점이 올랐는데 이들 10점의 낙찰가 총액은 약 483억원으로, 이는 올 한해 서울옥션의 전체 거래액인 1,286억원의 약 37.5%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순위 안에 든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1위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콰란타니아(Quarantania)’(이하 낙찰가 6,700만 홍콩달러·약 95억원), 2위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3-II-72 #220’, 3위는 세실리 브라운의 ‘피자마게임(The Pyjama Game)’(3,900만 홍콩달러·약 56억원), 그리고 4위는 리히텐슈타인의 ‘서류가방이 있는 정물’(HKD 3,500만 홍콩달러·약 50억원)이다. 그리고 5위부터 10위 안에는 약 25억원에 거래된 백자대호(1,800만 홍콩달러)와 국내에서 지난 3월 약 47억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소’ 외에 김환기의 작품 4점이 올랐다. 1954년작인 ‘항아리와 시’(2,900만 홍콩달러·약 40억원), 1971년작 전면점화 ‘27-XI-71 #211’(2,300만 홍콩달러·약 33억원), 1957년작 ‘영원의 노래’(30억원), 그리고 1958년작 ‘산’(22억원)이 그 작품들이다. 이렇게 김환기는 올해 경매 톱10 안에 5점의 작품을 올리고, 이들 5점의 낙찰 총액만 약 210억원에 달하여 시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강세를 증명했다. 지난해 설립된 중국 상하이의 파워롱 미술관에서는 지난 11월 8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 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중국에서 한국 추상미술을 대규모로 소개하는 최초의 전시로 추상미술의 대가 김환기를 비롯해 단색화의 거장들을 집중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 현재 김환기의 1970년대를 대표하는 전면 점화 대표작들이 전시 중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에 있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리의 미감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풀어내 1970년대부터 이미 뉴욕 화단에서 인정받았던 김환기의 수준 높은 미감과 작품성이 더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세계로 나아가 1,000만달러 이상의 거래기록을 볼 수 있는 2019년을 기대해본다.
/서울옥션 국제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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