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석 증권부장
연기자가 울고 예능인도 운다. 주말 내내 이어진 눈물의 시상식은 낯익은 세밑 풍경이다. 참 고단했던 무술년, 우리네 삶은 실로 눈물의 바다였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아르바이트생을 안 쓰고 밤낮없이 일하는 동네 편의점 아저씨의 한숨은 눈물범벅의 한숨이요, 인건비를 못 줘 20년 숙련공을 자를 수밖에 없었던 어느 영세기업 사장님의 비통함과 자기소개서를 100장 넘게 써도 취업 못한 옆집 20대 청년의 울분은 피눈물 그 자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탈원전 정책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원전 협력사 직원들은 억울해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었을지 모른다.
고금을 막론하고 새해는 곧 희망이요, 축복이다. 묵은 때를 벗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출발선에서 서서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새해가 두렵다고 한다.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지고,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노사·사회 갈등과 반목은 더 깊어지고…. 기해년의 새해가 ‘희망고문’일 것이라는 탄식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이유다. 기해년을 하루 앞두고 통과된 최저임금 시행령만 봐도 그렇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차 부품업체, 심지어 식당 주인아주머니까지 그렇게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서 빼달라고 눈물로 호소했건만 문재인 정부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민초들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싹둑 잘라버렸다. 아마도 기해년은 생존의 기로에 선 수십만, 수백만 명 서민들이 울부짖는 통곡의 종소리로 시작을 알리지 않을까 싶다.
통곡의 소리는 침몰하는 주식 시장에서는 살려달라는 절규로 증폭된다. 무술년 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최악이었고 9년간 ‘팔자’로 버티다 2018년 순매수로 돌아섰던 개미들의 피울음에 여의도는 ‘눈물의 섬’이 돼버렸다. 2,600을 호기롭게 돌파했던 코스피는 급기야 2,000선이 무너졌고 하락률은 1월 고점 대비 21%로 추락했다. 시가총액은 무려 458조원(코스피+코스닥)이나 사라졌다. 개인들이 가장 많이 산 삼성전자와 LG전자 수익률은 각각 -24.06%, -41.23%에 달한다. 국내 주식형펀드 2,688개(10억원 이상)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모조리 마이너스다. 수백만 개미들의 피 같은 돈이 허공에 뿌려진 것이다.
그렇다고 기해년을 기약하기에는 국내외 상황이 심상치 않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경제가 동반 하강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하고 미중 무역전쟁의 후유증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1월에 우리 버팀목인 반도체 출하량이 10년 내 최대 감소(-16.3%)하는 등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성장률 2% 초반대 사수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자본 시장을 방치하는 듯한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를 보면 개미의 눈물은 새해에도 마를 날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가 2,000선이 붕괴되며 개미들이 아우성쳤을 때조차 문재인 대통령은 전과 다름없이 외면으로 일관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청와대 게시판에 ‘문재인 대통령님, 주식시장이 침몰하는데 대책을 세워주세요’라는 애원의 글이 올라오고 수만 명이 호응했을까.
며칠 전 밤늦게 탄 택시의 50대로 보이는 기사는 대뜸 “문재인 정부에서 희망을 버렸다. 내년은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다. 승객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얘기한다”며 비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2기가 아니라 박근혜 2기”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요즘 문재인 정부가 전 정권을 적페청산한다더니 언론 장악,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불법사찰 등 그때의 적폐행위를 따라 하고 있다는 정치권의 혹평은 들어봤지만 택시기사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빠르게 식어가는 민심 앞에서 기해년에 어떤 통곡이 들려올까 두려워진다. 남은 임기 3년, 반복되는 절망이 세밑의 낯익은 풍경이 될까 더 두렵다.
jsj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