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에 불과했다. 먹고사는 게 힘들 때였다. 2017년에는 89%로 선진국 수준에 접근했다. 지난해 수출액은 6,000억달러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인 ‘30-50클럽’에 들게 됐다.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가 복구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9년, 대한민국이 대전환의 문턱에 섰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대기업·수출중심 경제로 성공방정식을 써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0여년간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 불과했고 6월 항쟁으로 세운 ‘87년 체제’는 그런대로 작동했다. 탄탄한 제조업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내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판이 바뀌고 있다. ‘주요2개국(G2)’이 된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에서 보듯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또 ‘중국제조 2025’를 앞세워 정보기술(IT)과 로봇·바이오 강국으로 가고 있다. 우리의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은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나섰다. 스위스투자은행 UBS는 두 나라의 무역전쟁이 확산할 경우 올해 중국 성장률이 5.5%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한다. 지난해 중국의 성장률 목표치는 6.5%다. 이 와중에 북한은 핵무기를 통해 ‘게임체인저’로 등장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향방이 정해지는 것이 올해다. ‘90일 휴전’ 시한은 오는 3월1일이다. 양국 관계는 북핵 문제에도 영향을 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이어간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시기가 올해인 셈이다.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OECD 국가 상위 절반의 46%에 그치는 노동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은 올해 10.9% 올랐다. 정부는 470조원의 ‘슈퍼예산’으로 양극화를 줄이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부채에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철강 같은 주력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미래연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민생지수는 93.23으로 박근혜 정부(97.80) 때보다 나빠졌다.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정확한 국력분석을 바탕으로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국가 대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생사가 달린 문제다. 중국이 우리를 건드리면 자신도 피해를 본다는 ‘고슴도치 전략’도 없다.
경제는 어둡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일 “5년 뒤에 먹고살 게 없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이 몇 년 안에 생사의 기로에 선다는 얘기다. 반면 지난해 일본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신산업구조 비전’을 내놓았다. ‘미래전략 2019’를 펴낸 이광형 KAIST 석좌교수는 “국가가 처한 위기에 대응하고 해결하는 주체는 정치인데 우리나라 정치는 가장 낙후된 분야 중 하나”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운영의 기조가 바뀌면서 미래 청사진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치가 급변하는 상황을 쫓아가지 못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국정농단 사건을 일으켰고 공유경제와 빅데이터 같은 4차 산업혁명 법안은 국회 논의과정에 막혀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도 보수와 진보가 크게 엇갈린다. 이대로는 국제정세를 따라잡기는커녕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선거가 없는 올해가 정치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체질개선을 위한 ‘골든타임’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외교·안보는 올해가 분기점이다. 경제도 시간이 없다. 2000년대 초 5%였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8%까지 내려왔다. ‘수축사회’를 쓴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은 패러다임 변화 시한으로 5년을 제시했다.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2~3년의 움직임이 향후 50년, 10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후에는 답이 없다. 우리나라는 2026년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들어간다. 그전까지 노동생산성 개선을 포함해 신산업을 키워야 한다. 다른 변수가 없으면 고령화로 인한 정부 순채무는 2060년 GDP의 196%까지 치솟게 된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4년 동안 구조개혁을 해내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도 출범한 지 20개월이 지났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적폐청산 같은 과거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정부 정책이 빨리 바뀌지 않으면 3~5년 뒤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며 “지금은 정부가 위기를 앞당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