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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그래도 희망은 있다] <1> 원부성 원기업 회장 "끊임없이 혁신...수출中企로 거듭났죠"

국내 첫 콘크리트 전주 만들었지만

사업 사양화...'디자인 폴' 눈돌려

미국·캐나다 등 북미시장 진출

굴뚝산업에서도 강소기업 일궈

황금 돼지의 해, 기해년(己亥年)이 밝았지만 중소제조업 현장은 우울하기만 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에 경기 침체까지 더해지며 생존을 걱정하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1월 중소기업 체감경기전망지수(SHHI)는 80.9로 2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아직도 현장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눈 앞에 닥친 파고를 헤쳐나가는 중소기업인들이 버티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술개발과 시장 개척을 통해 내일의 희망을 빚어가는 중소제조업체 현장 5곳을 차례로 소개한다.

원부성 원기업 회장이 2일 오전 경기도 양주에 자리한 공장에서 올해 사업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서민우기자




영하 5도의 추위가 몰아진 2일 오전 콘크리트 흄관과 전주를 만드는 원기업이 자리한 경기도 양주시 칠봉산로에 들어서자 블록처럼 쌓아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원기둥이 시선을 압도했다. 2만 평 부지의 야적장엔 원심력을 이용해 콘크리트를 균일하게 살포해 만든 흄관과 전신·전등 등의 전선을 지지하는 전주들이 강추위조차 이겨내겠다는 듯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땅에 놓여 있는 수백 여 개의 흄관과 전주들 사이로 난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초록 빛깔의 공장이 위용을 드러냈다.

따뜻한 악수와 함께 기자를 맞이한 원부성(64·사진) 원기업 회장은 “이 곳이 바로 전봇대와 수로관 등 사회기반시설에 꼭 필요한 콘크리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굴뚝 산업의 핵심”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원기업은 공장 생산 시설 점검을 위해 최소한의 인력을 제외하고 전체 200여명의 근로자들이 이번 주까지 꿀맛 같은 겨울 휴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원 회장은 시설 점검 중인 근로자를 격려하고, 공장의 이상 유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새해 첫날부터 생산 공장을 찾았다.

원기업은 원 회장이 선친인 고(故) 원용선 전 회장의 가업을 이어받아 경영하고 있는 국내 대표 콘크리트 전주기업이다. 원기업의 전신인 삼원기업은 국내에서 최초로 콘크리트 전주를 만든 회사다. “차를 몰고 도로를 지나거나 인도를 걷다 보면 변압기가 달려 있는 콘크리트 전신주를 어렵지 않게 마주치잖아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1975년 콘크리트 전신주를 개발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대부분 벌목한 나무로 전주를 만들었어요. 콘크리트 전신주가 늦게 나왔다면 우리나라 산림은 황폐화됐을지도 모르죠”

원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그의 부친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이승만 대통령 시절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에서 근무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었던 부친은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삼원기업을 설립, 나무 전주를 콘크리트 전주로 바꾸는 일에 나섰다. 원 회장은 “당시 아버지는 유학을 다녀온 뒤 이승만 대통령에게 두 가지를 제안했는데 하나가 콘크리트 전주였고, 다른 하나가 각 가정에서 쓰는 전기전압을 110V에서 220V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엔지니어이면서도 경제와 산업구조 변화를 읽는 눈이 뛰어 나셨던 분”이라고 부친을 떠올렸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부친이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원 회장은 가업을 물려받았다. 회사 이름도 2001년 원기업으로 바꿨다. 혹독한 노력 끝에 회사를 살려낸 원 회장은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끈질긴 근성과 혁신의 DNA를 꼽는다. 그는 “IMF 때는 회사가 어려워지고 집안이 몰락할 위기까지 처했지만 선친으로부터 배워 온 현장경영과 끈질긴 근성을 바탕으로 극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전방 부대인 백골사단에서 보낸 2년간의 장교 생활과 평소 철인3종경기로 다져진 정신력도 위기 탈출에 도움을 줬다.



원 회장은 2000년대 들어서며 콘크리트 전주사업이 레드오션에 접어들자 디자인 폴로 눈을 돌렸다. 디자인폴은 콘크리트에 규사나 실리카 등 천연석을 혼합, 연마 가공해 만든 일종의 대리석 돌기둥이다. “콘크리트 사업의 사양화 추세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도쿄 인근 오다이바에 설치된 가로시설물을 발견하고는 ‘바로, 이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원 회장은 2008년 원천기술을 갖고 있던 일본 요시모토폴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후 6년에 걸쳐 150억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원 회장은 당시 1,000만원 수준이던 디자인 폴의 가격을 4분의 1수준인 200만원 대로 낮췄지만 국내에서는 주요 수요처인 정부기관과 지자체들이 선뜻 나서질 않았다. 한국 시장에서 한계를 느낀 원 회장은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지난 2014년 미국에 디자인폴을 수출했던 원 회장은 미국 진출 5년 만인 올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됐다고 말한다. 원기업은 현재 미국 50개 주 전역에 철탑, 전주 등을 설치하는 인프라 기업 발몬트(Valmont)사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형태로 디자인 폴을 납품하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원 회장은 “지난 2014년 미국 진출 후 특허 등록과 시장 개척에 공을 들여왔다”며 “현재 발몬트사와 원기업이 만든 디자인 폴에 대해 마지막 성능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2월 즈음이면 이 작업이 끝날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원기업은 최종 테스트 종료 후 발몬트와 OEM 계약을 체결하는 대로 현재 양주 공장 부지를 2만평 더 늘려 디자인 폴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스마트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그는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하는 굴뚝 산업 기업도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해 수출 강소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며 “디자인폴로 재도약할 원기업을 관심 있게 지켜봐 달라”고 미소를 지었다.
/양주=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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