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골프전문사이트 골프WRX는 최근 자사 인스타그램에 프로골퍼 최호성(46)의 경기 영상을 올리며 “최호성은 유니콘”이라고 적었다. “이 남자의 모든 면이 매력적이다. 빨리 미국에서도 보고 싶다”는 글과 함께였다.
2018년은 상상 속의 뿔 달린 말 유니콘이 필드를 누비며 사람들을 홀린 한 해였다. 산업계에서 유니콘의 뜻은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다. 이 뜻 또한 최호성에게는 어색하지 않다. 미국과 영국·일본 등 세계 유수 매체에서 연일 그를 조명하고 해외 팬들의 뜨거운 반응이 해를 넘겨도 식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골프전문지에서는 그를 취재하러 한국을 찾기도 했다. 독특한 스윙과 극적인 리액션으로 필드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집어놓은 최호성. 그는 지난해의 센세이션을 등에 업고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또다시 경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경기 용인의 자택 인근 음식점에서 최근 최호성을 만났다. 그는 “과분한 사랑이 영광스러우면서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새해에는 골프장 안팎에서 모범이 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많다”고 했다.
화두는 역시 ‘낚시꾼 스윙’. 지난해 6월 국내 한 대회에서 우승 경쟁에 뛰어들면서 TV 중계에 자주 잡혔고 자연스럽게 스윙이 화제가 됐다. 마지막에 오른쪽 다리를 들어 회전을 돕는 피니시 동작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계속 보게 하는 마력을 내뿜었다. SNS가 도화선이었다. 미국 투어의 남녀 선수들 사이에 최호성 흉내 내기가 유행을 타기도 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최호성의 스윙 영상을 보다가 엄청나게 많은 미국 골프팬들이 밤잠을 설쳤다”고 전했다.
낚시 채를 잡아채는 모습과 비슷한 이 스윙은 이미 많이 알려졌듯 치열한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젊은 선수들한테 비거리에서 크게 뒤지지 않고 거의 동등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연구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체격 조건이나 나이·유연성·힘까지 불리한 것밖에 없더라고요. 결국 스윙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 건데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아주 정교해진 것 같아요. 어설프게 보일지 몰라도 정립 단계에 접어들었달까. 이 스윙으로 거리 조절은 물론 드로·페이드·슬라이스·훅까지 구질 변화도 자유자재로 합니다. 지금은 이 스윙이 더 편한 스윙이 됐어요. 이렇게 안 하면 스코어를 못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폼이 좀 억지스럽다’ ‘쇼맨십일 뿐이다’와 같은 반응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에 최호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축구에 바나나킥이 있고 테니스에 다양한 서브 방법이 있는 것처럼 골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모습이 다 다르듯이 유연성도 다 차이가 있고 그러다 보니 스윙도 다 다른 것이죠. 골프가 장난이냐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장난이 아니죠.”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야 우리 삶이 재미있듯이 정답이나 정석이 따로 있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물론 저의 이런 생각 또한 정답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낚시꾼 스윙은 알고 보면 꽤 역사가 깊다. “타이거 우즈처럼 기계적인 스윙을 동경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변화에 대한 욕구가 컸습니다. 지난 2011년인가 이듬해부터 조금씩 시도했던 것 같아요. 이 사진은 2013년에 찍힌 거예요.”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최호성이 한쪽 다리를 경쾌하게 들고 타구 방향을 살피는 사진이었다. “일본의 사진작가분이 찍어주신 건데 그때부터 저를 뭔가 캐릭터가 확실한 선수라고 여기시고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지난해 5월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지난 시즌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성적도 내게 된 데 대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최호성은 지난해 11월 일본프로골프 투어(JGTO) 카시오 월드오픈에서 우승했다. 5년 8개월간 우승 가뭄에 시달리다 건져 올린 JGTO 통산 2승째였다. 국내 투어에서는 2008년과 2011년에 우승 경험이 있다. 2년간 유효한 투어 출전권을 얻은 것 말고도 의미가 큰 프로 통산 4승째였다. 그저 스윙이 신기한 선수로 잠깐 화제가 되고 끝났을 수도 있었는데 이 우승으로 불씨가 열풍에 올라탄 셈이 됐다. 일본에서는 최호성을 ‘토라상’이라고 부른다. 이름의 가운데 글자인 범 호(虎) 자의 일본어 발음이다. “처음에는 ‘설마 욕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친근감을 듬뿍 담은 표현이더라고요. 지금은 이름만큼 친숙해졌습니다. 대회장에 가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고 그분들 사이에 뭔지 모를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에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어요.” 최호성은 지난 시즌을 상금 랭킹 9위(6,948만엔·약 7억1,100만원)로 마쳤다. 2013년 데뷔 후 최다 상금, 최고 순위다. 낚시꾼 스윙의 완성으로 2년 전보다 평균 드라이버 샷 거리가 15야드나 늘면서 성적이 따라왔다. 지난 시즌 평균 282야드를 찍은 최호성은 “거리를 내야 유리한 홀에서는 300야드도 보낸다”고 했다. 그는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만들어지고 이뤄진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주변에도 해가 가기 전에 우승할 것 같다고 늘 말씀드려왔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고 돌아봤다.
올해 목표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매체들은 최호성을 최고 권위 대회인 마스터스 등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에 초청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얘기를 꺼내자 최호성의 표정은 사뭇 조심스러워졌다. “마스터스가 어떤 곳입니까. 골퍼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인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저는 그저 언론 기사를 통해 접했을 뿐이고 직접 나서서 욕심을 부릴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후원사들의 제안도 많아질 것 아니냐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쪽으로는 워낙 잘 모르고 골프를 해왔어요. 새해에도 지금 처한 환경에서 골프에 매진할 겁니다.” 최호성은 “공 치기도 바빠죽겠다”며 허허 웃어넘겼다.
최호성은 우리 나이 스물여섯에야 골프에 입문한 늦깎이 중의 늦깎이다. 골프장 직원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은 죄다 연습장에서 보냈다. 원래 성하지 않았던 오른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고교 졸업반 때 냉동참치 작업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전기톱에 손이 빨려 들어가면서 오른손 엄지의 첫 마디를 잃었다. “계획대로 착착 되는 게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생각했던 대로 잘 안 되는 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어렵겠지만 예상 밖의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호성은 지난 한 해가 최고로 빛났던 한 해였던 이유도 인기나 상금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자세로 하루하루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는 데 후회 없는 한 해였습니다. 올해도 인기나 상금에 연연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는 우리 삶에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19년의 최호성은 또 변할 겁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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