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지난해 4·4분기에 반도체 영업이익이 5조원 이상 빠진 것으로 예측되면서 부진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그간 업황에 부정적인 쪽에서는 △서버 과잉 투자로 인한 재고 증가 △스마트폰·PC 수요 부진 △경기 침체에 따른 투자 일정 지연 등에 주목해온 반면 우려가 지나치다는 부류에서는 △5G 등 인프라 투자 수요 △인공지능(AI) 서버 등 고수익 제품으로 포트폴리오 전환 △인텔의 새 CPU 플랫폼 출시에 따른 투자 수요 등에 초점을 맞춰왔다.
업계는 큰 폭의 수요부진이 확인된 만큼 회복 시점 예측에 확실히 조심스러워졌다. 이르면 2·4분기부터 개선될 것이라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하반기까지 부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신중론이 커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잠정실적이라 D램과 낸드플래시 등 품목별로 얼마나 팔았느냐를 보여주는 ‘비트그로스(BITGrowth)’가 나오지 않아 예측이 어렵다”면서도 “경제 환경을 보면 하반기에 수요가 살아난다고 보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전망도 나빠지고 있다.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 2016년(1Gb당 0.55달러)부터 지난해(0.95달러, 3·4분기 기준)까지 올랐던 D램의 평균판매가격은 올해 0.78달러, 내년 0.62달러로 빠질 것으로 전망됐다. 가격 하락으로 수요가 더 붙을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가격 하락만큼 시장이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경기 둔화 조짐에다 중국 경기를 낙관하기 어려운 점은 최대 부담요인이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 반도체 업황 회복을 예상하는 전망이 너무 낙관적인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기가 더 둔화될 여지가 있고, 특히 미국 경기가 꺾이는 추세에서 반도체 가격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도 “당분간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며 “저점을 추가로 확인하는 코스로 갈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미중 통상분쟁이 국내 반도체 업계에 부정적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초호황 국면이 급격히 꺾이면서 아직 기술력이 채 올라오지 못한 후발 기업들은 도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임원은 “근 2년간의 초호황 국면이 마무리된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YMTC 등 중국 업체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투자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봤다. 7일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중국 푸젠진화와 D램을 개발해온 대만 UMC가 관련 개발팀을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젠진화는 중국의 첨단 분야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의 핵심 기업 중 하나라 D램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UMC는 푸젠진화에 기술을 지원해왔으나 UMC가 D램 공동 개발을 포기하면 푸젠진화의 기술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