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을 취재할 때 가장 답답한 분야가 바로 부동산가격 공시제도다. 실거래가격·공시가격 등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틀어쥐고 있는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은 시세 대비 공시가 반영률인 ‘현실화율’을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국토부는 “현실화율이 아파트·단독주택·토지별로, 또 서울·지방 지역별로 차이가 커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현실화율은 대략 시중에 알려진 수준”이라는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담당자들은 공시가 현실화율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는지조차 얼버무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취재기자의 입장에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듯 지역별로, 주택 유형별로 일일이 검색해 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표본 숫자가 턱없이 작은 이유다. 빅데이터 시대에 이런 원시적인 계산법으로밖에 현실화율을 파악해볼 수 없다니 기자도 답답한데 이에 근거해 세금을 내야 하는 납세자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공시가격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산정 방식의 불투명성에 기인한다. 아파트의 경우 ‘시세’가 아닌 ‘조사가격’을 산정하고 여기에 공시 비율 80%를 곱한다. 이 비율은 체계적인 정책적 의사결정 과정도 없이 ‘그냥’ 정한 비율이다. 정부가 주택 및 토지의 공시가격을 토대로 매년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보유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근거가 되는 공시가격은 깜깜이 방식으로 산정되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6월 “대내외 의견 수렴을 거쳐 공시가격의 형평성·투명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좀 달라지려나 했다. 형평성이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에서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떤 식으로 바로잡겠다는 체계적인 방침, 즉 일종의 ‘로드맵’을 세울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국토부가 유독 로드맵이라는 말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부인한 점은 찜찜한 대목이었다.
최근에야 표준 단독주택과 표준지 공시가격 사전 공개로 그동안 국토부가 로드맵이라는 단어에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킨 이유가 명확해졌다.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대내외 의견 수렴 과정,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없이 고가의 주택과 토지에 대해 이번에 주먹구구식으로라도 급하게 올려야겠다는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국토부는 이제라도 전체 공시가격의 현실화율과 형평성이 얼마나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를 지역별, 유형별로 구체적으로 수치를 공개하고, 개선 방향과 실행 방안을 전문가와 납세자의 의견을 수렴해 투명하게 도출해야 한다. 공시가격 정상화와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두 가지의 충돌하는 목표를 어떻게 균형감 있게 달성할지에 대해서도 의견 수렴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공시가격 산정은 당연히 정부의 업무이다. 일각에서 마치 민간의 영역을 정부가 침해한 양 호도하는 것은 맞지 않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토부가 법률로 엄격하게 규율하고 있는 조세행정을 지금과 같이 우격다짐식으로 펼친다면 이런 비난을 받아도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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