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이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이후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져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수익률 개선보다는 주주권 행사 방안인 스튜어드십 코드 실행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기금 전문가들은 해외 연기금의 성공 사례를 들어 △기금운용위의 독립성 강화 △투자 인력 영입과 양성을 위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도입 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금운용발전위원인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 관련 논의에서는 사회적 책임만 강조되면서 수익률에는 관심이 없다”며 “국민연금 규모가 늘어나는 앞으로 10년간 장기수익률을 높인다면 기금 고갈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2018년 연간 수익률은 -1.5%(잠정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0.1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은 같은 해 9월 말 기준 7.11%의 수익률을 기록해 주요 연기금의 수익률을 압도했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은 2.3%를 기록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연기금의 진정한 실력을 평가하는 장기 수익률도 캐나다연금은 최근 10년 평균 9.1%로 최상위다.
캐나다연금이 수익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독립성을 꼽는다. 캐나다연금은 민간이 아닌 공적연금이지만 투자를 결정하는 투자위원회의 독립성이 철저하게 보장된다. 캐나다연금이나 정부조직이 아닌 별개 조직이다. 경제·경영·투자 전문가로만 구성된 만큼 수익률 위주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보건복지부장관을 위원장으로 정부위원은 기재부 등 각 부처 차관, 민간위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등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의 입김과 이해관계자의 손에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를 책임지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양성하는 방식도 차이가 크다. 캐나다연금은 투자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 전문가를 데려오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급여를 제공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역할을 하는 최고경영자의 연봉은 40억원, 운용역에게는 최고 32억원 가량을 지급한다. 캐나다연금의 최고경영자부터 투자 운용역 등의 근속 연수는 평균 10년 이상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이라 투자 운용역의 연봉 인상이 어렵고 국내외 투자 전문가를 영입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장기간 투자 수익률을 내기 위한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해외 국부펀드에 근무한 한 관계자는 “해외 주요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에서 근무한 한국인 전문가들이 연봉은 낮아도 한국에서 근무하며 공헌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된다고 해도 임기가 2~3년이고 투자 의사결정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직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조직에서 투자에만 집중하는 캐나다연금은 최근 10년 이후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달러 자산 기반의 포트폴리오 전략 변경에 들어갔다. 캐나다연금 투자위의 자체 결정에 따른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가 투자전략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시장변화에 따른 전략 변경이 어렵다는 게 기금운용본부 안팎의 지적이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성과평가위원회는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투자 자산군을 기준으로 투자비중을 결정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투자 자산군 내 위험요소를 세분화해 투자하자는 의견을 냈다. 분산투자를 정확하게 실행하기 위해 자산 배분을 조정하는 것이다. 캐나다연금은 물론 미국, 네덜란드 등 각국 연기금은 전체 자산에 이 같은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가 매년 주식과 채권에 대한 투자비중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자산군 별로 따져 투자 비중을 조정할 수 없다. 1~2%의 미세 조정만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투자 수익률과 관련된 자산 배분 조정은 기금운용본부에 전적으로 맡기는 게 맞다”며 “자산배분은 투자 수익률의 95%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현재 국민연금은 아무도 자산배분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제대로 된 평가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인 국내 주식 전략도 비슷한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국내 주식 투자 전략은 코스피 대형 종목으로 구성된 코스피 200을 벤치마킹하도록 되어 있다. 2014년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 내 일부 실장이 주도해 결정됐다. 그러나 투자 수익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는 전체 코스피 지수를 기반으로 한다. 지난해처럼 코스피와 대형주가 급락할 경우 시장평균 수익률을 밑돌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기금운용위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에 밀렸다.
캐나다연금의 성공사례가 주목을 받으면서 정부도 이를 벤치마킹해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제일모직 사태가 터지고 정부가 바뀌면서 국민연금 투자 의사결정에 정부와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쪽으로 여론이 돌아섰다. 연기금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이 어렵다면 기금운용위를 상설화하고 권한과 책임을 함께 지도록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금운용위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가입자 관련 단체 등이 개입은 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며 “복잡한 조직 구조라도 단순하게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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