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장이 무서운 게 아니라 고객이 무섭습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가 싫어하는 광경은 보고하기 위해 직원들이 사무실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다. 고객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에서다. “군대를 안 다녀와서 권위·의전 이런 게 체질에 잘 안 맞다”며 웃어넘길 정도다. 실제로 직원들에게 “보고는 지면으로 해야 하고 얼굴 보고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보고는 리브똑똑으로, 또 사내 메신저로 뭐든 전달만 하면 되지 그 시간에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고민하지 말고 고객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라는 얘기다.
그는 최초의 여성 리스크관리부행장, 최초의 증권사 여성 최고경영자(CEO) 등 여성 1호 타이틀을 달고 살았다. 서울대 출신에 꽃길만 걸어왔을 것 같지만 손사래를 친다. “레드카펫 인생은 없습니다. 저도 대학원을 다니다 결혼·육아를 하면서 일을 그만뒀었고, 또 복귀까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첫 자리는 계약직일 때도 많았죠. 삶은 꽃길일 때가 아니라 자갈밭을 걸을 때 마음가짐이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성공 당시를 주목하지만 자갈밭에서의 마음가짐이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는 설명이다.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질문에는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잘라 말했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A4용지에 낙서하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종이에 질문을 쓰고 화살표로 하나씩 원천을 그려나가요. 화살표를 그리다 보면 그 원천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거나 사실 별 게 아닐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일어나지 않을 일도 많죠.”
인생선배로서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도 많다. “여성의 섬세함은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또 단점이에요. 섬세한 감정은 가끔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조직에서 일정 정도의 희생정신을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죠. 회사에 오면 집이 걱정되고, 집에 가면 회사가 걱정되잖아요. 그럴 때는 ‘모드 전환’이 필요해요. 어차피 몸이 있는 곳,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을 훈련해야죠.”
우수한 여성 인력이 더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지원의 필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박 대표는 대학생 자녀 둘을 둔 워킹맘이다. “여성들이 일터에서 희생정신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마음 편히 일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환경은 개선돼야 합니다. 통섭의 시대에 여성들이 가진 유연함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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