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출신 박재식 전 한국증권금융 대표가 21일 18대 저축은행중앙회장에 선출됐다. 76개 저축은행이 모여 총회를 열고 투표를 한 결과다. 2명의 후보를 놓고 회원사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2차 투표까지 가서 결론이 났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당국이 낙점한 낙하산 인사를 거수기처럼 (총회를 열고) 승인만 했는데 이번에는 회원사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며 “앞으로 회장의 역할이 더 엄중하고 막중해졌다”고 말했다.
당초 박 신임 회장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관이냐, 민이냐’를 놓고 저축은행들이 막판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았다. 박 회장은 관료 출신이지만 경합을 벌였던 남영우 전 한국투자저축은행 대표는 업계 경력만 40년인 민간 출신이다. 투표 결과는 1차 때는 박 회장이 44표, 남 전 대표가 29표를 얻었다. 총회 출석 회원사 3분의2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에 1차 투표는 부결됐고 연장전인 2차 투표를 치르고 나서야 결론이 났다. 2차 투표는 과반만 얻으면 된다는 규정 때문에 1차 투표보다 1표만을 더 얻었지만 박 회장이 45대28(기권 3표)로 결국 선출됐다.
그동안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중앙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자 1명을 만장일치로 추대하면 총회에서 1차 투표 만에 선출해왔다. 오랜 관행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관행이 깨졌다. 일부에서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당국이 인사에 개입하지 않자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저축은행들이 일종의 ‘반란’을 도모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이번 회장 선거를 놓고 잡음도 많았다. 자산 규모가 업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해 대표성이 떨어지는 일부 저축은행이 회장 선거에 개입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업력 40년 이상 된 일부 중소형 저축은행들이 자기들만의 리그인 양 회장을 알박기하려 했다는 극단적인 지적도 나온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할 만했다. 이에 중앙회 노조도 반발했고 업계 내부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민간 출신인 남 전 대표로 몰린 ‘28표’가 이런 반란의 증거다.
박 회장은 이번 선출과정의 잡음과 중앙회 이사회 구성 등에 대한 혁신방안을 묻는 질문에 “회원사들과 잘 협의해 해결하겠다”고만 말했다. 중앙회가 저축은행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고 “누가 회장이 되든 이번에는 저축은행중앙회 운영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장과 동떨어진 대답이다. 더구나 중앙회가 소수 소형 저축은행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면 업계 전체를 제대로 대변할 수 없고 관리 감독도 부실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당국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새로 취임한 날 이런 얘기를 하면 야박해 보이지만 박 회장의 당선 소감에는 혁신의 메시지가 없어 조금은 우려스럽다.
kmso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