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증시에 상장될 예정인 차량공유 플랫폼업체 우버의 기업 가치는 시장에서 135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가총액이 30조원이 채 안 된다는 현대자동차의 5배에 이른다. 우버의 가치는 벤츠를 소유한 다임러(61조원)와 BMW(53조원)를 훨씬 웃돈다. 플랫폼의 위력은 자율주행 선박과 조선·철강 등 기존 중후장대 산업 현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스마트공장과 로봇 등이 모두 5세대(5G) 통신과 인공지능(AI)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계로 발을 뻗는 플랫폼 기업들이 2,000만 소비자가 밀집된 ‘수도권’ 시장이 있는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는 “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개별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데 매진한 사이 경쟁자는 새 시장을 만들어 우리 산업 자체를 잡아먹고 있다”며 “축적된 기술력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결합해 새 시장을 만들어야 더 큰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앙숙도 손잡게 만드는 미래 산업 파도=올해 초 자동차 시장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고급 차 시장의 ‘100년 숙적’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자동차공유(카셰어링) 서비스 사업회사를 합병한다는 발표다. 다임러그룹의 카투고(Car2Go)와 BMW그룹의 드라이브나우(DriveNow)는 이달 말 공식적으로 합병해 차량과 택시 공유, 미래 차 충전 사업에 함께 뛰어든다. 얼마 전 세계 1위 전자업체 삼성전자(005930)의 스마트TV에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 애플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아이튠즈(무비·TV쇼)’를 탑재한다는 뉴스도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애플이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에 자사의 생태계를 연 것이다.
앙숙인 삼성전자와 애플, 100년간 필사의 경쟁을 해왔던 벤츠와 BMW를 손잡게 한 것은 기업을 침몰시킬 정도로 높아진 미래 산업의 파도다. 초고속 통신망 5G와 초당 조 단위를 연산해 분류할 수 있는 AI를 앞세운 플랫폼 기업들이 전통적인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을 잠식하는 중이다. 스마트기기와 가전,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를 모두 연결한 초연결사회는 플랫폼 아래에 놓이게 된다. 삼성전자가 최고의 스마트기기를 만들고 자율주행 전기차를 만들어도 이를 모두 연결하는 구글과 우버 등을 통해서 서비스하는 식이다. 최근 미국 GM이 깜짝 실적에도 북미 지역 직원의 36%인 1만8,000명을 자르겠다는 발표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GM은 우버와 양강체제를 구축한 리프트(5,800억원 투자)를 통해 자율주행 기반의 플랫폼업체로 진화하는 것이 목표다.
◇미래 산업의 중심, 한국은 없다=뼈아픈 대목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미래 산업의 생태계에서 우리 기업이 하위에 놓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신산업보다 전통 주력산업을 고도화하는 데 매진한 결과다. 실제로 2010년께 미국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 우리는 정부가 앞장서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투자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혈세를 담보로 한 수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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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들도 시장 변화에 둔감했다. 업종 파괴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자동차만 해도 노조 동의 없이는 생산라인 조정도 안 된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현실에 안주해온 결과물이다. 특히 보신과 현상 유지에 급급한 관료주의의 산물인 규제는 신산업 앞에 놓인 바윗덩이나 마찬가지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카카오가 한국형 우버로 진화하기 위해 내놓은 카풀 서비스가 택시 업계의 반발로 철회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신산업을 위해 고국을 등지는 것은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5G 시대에 맞춰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원격의료 등 혁신적인 신산업도 한국에서는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택시 단체 등의 소송으로 우버가 불법이 될 위기에 처하자 ‘운송 네트워크 기업’이라는 새로운 조례를 만들어 규제를 피하게 하며 신산업을 키워냈다.
◇정부 ‘규제 파괴’ 기업 ‘합종연횡’해야=지난 10년간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로 불린 유니콘 기업이 미국에서 113개, 중국에서 64개가 클 때 우리는 고작 3개에 불과하다. 정부와 제도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산업과 관련해 적극적인 이해 조정자가 돼야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산업이 싹틀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라톤 하듯 장시간 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해커톤’식 규제혁신을 하라는 조언이다. 김 특임교수는 “정부가 새 산업이 ‘기존 산업을 침범하는 사업자’라는 인식을 깨줘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가장 와 닿은 사업을 풀어 정부가 장애물이 아닌 규제를 깨는 ‘주도자’라는 생각을 퍼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적과의 동침’을 하게 유도하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현대차(005380)·LG전자·SK 등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 간의 전략적 동맹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용 반도체 등의 국산화율이 70%도 안 되는데 결국에는 커질 이 시장도 우리 전자와 자동차 기업이 해야 한다”며 “따로 독립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 부분은 어렵지만 정부가 지원을 통해 협업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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