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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文 "국민연금 경영참여하라"는데…관련 법규조차 제대로 준비 안돼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걸림돌은>

① 5%·10%룰 무시하고 경영참여시 비용 치러야

② 주주가 대표이사 해임 제안해도 이사회가 거부권 행사하면 그만

③ 현 국민연금법 재무투자만 가능…기금위 의결로만 제한적 적용





국민연금을 활용해 “대주주의 탈법과 위법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했다.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는 당장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표이사 해임 등을 강행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학계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관련 법규가 미비한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우선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자본시장법의 5%·10%룰이다. 5%룰은 상장기업 지분 5%를 취득하면 즉각 신고해야 하는 지분 공시 의무다. 1% 변동이 있을 때도 역시 5일 이내에 공시를 통해 알려야 한다. 지분 보유목적을 경영 참여로 바꿀 경우 더 신속하고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투자전략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주주권 행사 지침을 공시하고 그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연금 등에는 5%룰의 적용을 예외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10%룰은 더 큰 문제다.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지렛대는 커지지만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 6개월 이내에 얻은 이익을 반납해야 한다. 대표이사 해임 등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이 더 커질 수 있지만 이를 계량화해 객관적 근거로 삼는 작업도 쉽지 않다. 금융당국도 5%룰과 달리 10%룰 완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지난 23일 열린 수탁자책임위에서 국민연금이 7.34%의 지분을 보유한 한진칼에 대해 경영 참여를 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자 반대가 5명으로 찬성(4명)보다 많았다. 지분율이 11.68%인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7대2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민연금이 비용을 치르는 걸 감수하고 이사해임 등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 참여를 강행해도 이는 현실화하지 않을 수 있다. 현행 상법은 주요주주가 임기 중인 이사의 해임 등 주주 제안을 할 때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회가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시민단체에서 요구한 조 회장의 대표이사 해임이 무산될 수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의 활동 범위를 규정한 국민연금법에도 아직은 적극적 주주권 행사의 명분이 충분하지 않다. 현행법상 국민연금은 재무적 투자만 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복지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발표하면서 기금위원회가 의결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뒷길’을 터놓았을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와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센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무리하게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할 경우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논리다. 수탁자책임위에 참석했던 한 위원은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행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어렵다는 견해가 더 많았던 이유”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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