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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되는 유통업계 배송 경쟁…"지속 서비스 어려울 것" 주장도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유통업계에 배송 경쟁이 뜨겁다. 새벽배송, 3시간 배송에 이어 30분 배송까지 등장해 시범 서비스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과열된 배송 경쟁에 유통업계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셔터스톡




“주택가 골목에 택배·배송 차량 드나드는 거 보세요. 우리나라는 물류과잉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일배송, 당일배송을 넘어 시간대 배송 경쟁으로 가고 있어요. 박 터지는 거죠. 어쩌겠습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인데.”

유통업계 출혈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1라운드가 ‘가격 경쟁’이었다면 2라운드는 ‘배송 시간 경쟁’이다. 과거 배송 경쟁은 쿠팡, 위메프, 11번가 등 e커머스 업체들에 국한된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온오프라인 간 채널 경계가 무너지면서 이제 모든 유통업체들이 배송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 화두로 떠오른 배송경쟁

유통업계에서 배송 경쟁은 꽤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온라인 소비자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조사에서 1순위는 언제나 가격(최저가)이었지만 2순위는 요지부동으로 배송이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KPMG 조사에서도 가격(57%)과 배송(43%)은 높은 소비자 지지율로 굳건히 1, 2위를 유지했다.

과거 배송 경쟁은 e커머스 업체들 위주로 진행됐다. 온라인 유통채널은 모두 배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즉시성’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기에 온라인 업체 위주의 배송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2010년대 들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e커머스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 역시 온라인 채널에 진출하거나 서브 개념으로 운영하던 온라인 채널 운영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들 업체에게도 배송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2014년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쿠팡이 익일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론칭, 단번에 e커머스시장의 실력자로 급부상하면서 빠른 배송과 이를 가능케 하는 물류는 유통업체들의 최고 관심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최저가 경쟁 이슈가 e커머스 시장 전체를 집어삼키면서 배송·물류 이슈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시기에도 몇몇 업체들이 도전적인 몇 가지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최저가 경쟁 이슈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업체들이 파격적인 세일 프로모션을 남발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배송보단 가격에 집중됐고, 시장의 관심 또한 이 치킨게임의 승자와 패자를 예측하는데 쏠렸다.

2017년 가격 경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유통업체들이 새로운 차별 요소를 찾기 시작하면서 2018년부터는 배송 경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러 업체에서 당일배송 유사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경쟁은 격화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마켓컬리 등 신생 유통업체들이 당일배송보다 진일보한 새벽배송 서비스 등으로 주목받으면서 당일배송을 운영하는 업체들도 그 이상을 요구받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꺼내든 ‘신의 한 수’로 꼽힌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앞세워 단번에 e커머스시장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사진=쿠팡


◆ 최근 배송경쟁의 특징

배송이 유통업체 핵심 경쟁력으로 급부상하면서 최근에는 배송 경쟁에 뛰어드는 업체 범위도 훨씬 넓어지고 있다. CJ ENM이나 GS홈쇼핑 같은 홈쇼핑 업체들도 기간 한정이나 온라인숍 등 서비스에서 당일배송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이 같은 추세가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백화점은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뭔가 좀 둔하고 보수적인 운영을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백화점들도 (서울지역에서는) 모두 당일배송을 해줍니다. 예전엔 배송이 온라인에서나 중요한 문제였는데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상당히 차별적인 요소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아니, 모두 당일배송을 하고 있으니까 차별화보단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한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최근 배송경쟁의 특징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과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들의 선전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유통업체들의 새벽배송과 당일배송 시행 발표가 지난해 내내 이어지면서 이들 배송 서비스 뉴스가 식상해질 때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가 3시간 배송 카드를 꺼내 들어 다시 판을 흔들었다. 롯데마트는 올해 3월 ‘30분 배송’ 시범 서비스까지 시작할 예정이어서 업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갈수록 과열되는 경쟁

30분 배송까지 등장하자 유통업계 내에선 배송 경쟁이 너무 과열됐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배송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물류 시스템 확충·유지·운영비용이 커지면서 출혈 경쟁 2라운드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혈 경쟁의 피해는 자금력이 약한 중소 스타트업 위주로 가시화되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 그리고 새로운 유통공룡으로 성장한 쿠팡이 조 단위 돈을 밀어 넣다 보니 작은 업체들은 벼랑 끝으로 밀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새벽배송 서비스를 도입하고 시장을 키운 배민찬, 헬로네이처 등은 이미 매각 절차를 밟고 있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된 상황이다. 현재는 마켓컬리 정도만이 독자적인 생존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다.

새벽배송은 한때 이들 업체만의 특징이자 강점이었으나 최근엔 롯데와 신세계, 쿠팡 모두 새벽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경쟁력이 희석됐다. 빅 플레이어들은 기존에 갖춰진 물류 시스템을 조금 손보는 것만으로도 새벽배송이 가능해 서비스 대비 시설투자, 기업 규모 대비 시설투자 비용이 신생업체들에 비해 한참 작다. 게다가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어 배송 건당 지출되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물론 빅 플레이어들도 배송 경쟁 심화에 따른 추가 비용 지출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배송 건수가 많아 물류비용 절감 체감도가 크지만, 현재는 각종 배송 서비스의 등장으로 국내 빅3조차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송 1건당 평균 물류비용이 올라갔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30분 배송 등 앞으로 업계에서 신규로 나올 서비스들은 배송 비용을 따로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유통업계 영업이익률이 하락할 대로 하락해 있어 ‘고객 편의를 위한 추가 비용’을 업체가 떠안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 거예요. 무조건 투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쿠팡조차도 새로 나온 배송 서비스들은 유료로 제공하잖아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복합물류센터. 새벽배송을 위한 차량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사진=김강현 포춘코리아 기자


◆ 회의적인 의견도

업계 일각에선 신규 배송 서비스들이 현실에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의견도 나온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말한다. “한창 최저가 경쟁을 벌일 때여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지 과거 2015년, 2016년에도 획기적인 배송 서비스들이 나왔었어요. 30분 배송까진 아니지만 2시간 배송, 110분 배송 같은 건 그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때 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쿠팡, 위메프, 11번가 같은 온라인 기반 유통업체들은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여러 배송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쿠팡이 2시간 배송을, 위메프가 오후 6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저녁에 받아볼 수 있는 배송 등을 선보였다. 시범적으로 혹은 프로모션 식으로 선보인 배송 서비스들은 더 다양했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거의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구별해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시엔 최저 가격이 가장 큰 이슈였기에 상대적으로 배송 쪽에 관심이 덜했습니다. 전선을 분산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업체들 성격상 그냥 최저가 프로모션에 집중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화두가 배송이잖아요.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최저가 경쟁을 해야 했던 것처럼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배송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과거에 신규 배송 서비스를 내놓은 업체들이 그 서비스들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나 시스템 등을 갖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과거 2시간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가 1년여 만에 종료한 쿠팡에 문의를 하자 쿠팡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해당 서비스는 유료 모델로 2015년 7월 시작해서 2016년 9월 종료했습니다.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았어요. 익일배송이었던 로켓배송이 한창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저희가 내린 결론은 2시간 만에 받고 싶을 정도로 급한 물건은 웬만하면 고객이 그냥 직접 사러 간다는 거였습니다.”

다른 온라인 기반 유통업체들과는 달리 쿠팡은 당시 충분한 체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2015년 6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10억 달러 투자 유치를 받아 두둑한 실탄을 쌓아놓고 있었고 쿠팡맨·로켓배송 같은 물류 시스템도 확보하고 있었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하면 기업들이 언론사를 대하는 특유의 방어적 태도를 고려해도 ‘수요가 없어 서비스를 종료했다’는 답변은 꽤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유통업계의 미래는?

쿠팡 측의 답변이 전적으로 사실에 기초한다고 해도 현재 유통업계에 ‘배송 경쟁’이 불붙은 만큼 당분간은 배송 이슈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수요가 없었을지 몰라도 이슈가 계속되면 수요가 창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쟁이 가열돼 서비스 이용비용이 어느 정도 낮아지면 고객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다. 고객 입장에선 굳이 몇 시간 내에 받을 필요가 없는 상품이라도 이왕이면 빠른 서비스가 좋기 때문이다.

배송 경쟁의 격화로 유통업계는 또다시 격랑에 휩쓸렸다. 과열된 배송 경쟁이 국내 유통시장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 놓을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켓컬리 같은 신규 업체들은 내년에도 유통공룡들 사이에서 독립된 기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상향 평준화된 배송 서비스는 업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까? 가까운 미래 유통시장 상황이 사뭇 궁금해진다.

롯데마트 서울 금천점 매장. QR코드 기반 장보기 시스템으로 3시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롯데마트


<박스기사1. - 신기한 ‘예측배송 서비스’>

2013년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예측배송 서비스’라는 경천동지할 만한 특허 하나를 취득했다. 이 서비스는 말 그대로 고객이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배송을 시작하는 것이다. 고객의 기존 주문·검색 내역 등을 바탕으로 아마존 빅데이터가 고객의 미래 구매 정보를 사전에 예측해 고객이 주문을 하기도 전에 고객 주소지 근처 물류창고에서 배송을 시작하는 시스템이다.

아마존은 이 서비스를 아직까지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지만, 물류·배송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고려 사항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모델이어서 아직까진 현실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계, 드론 등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특허의 상용화가 아주 먼 미래는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박스기사2. - 물류 현장에 부는 4차 산업혁명 바람>

4차 산업혁명은 국내 유통업계 배송·물류 현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쿠팡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랜덤 스토우(Random Stow) 방식의 물류창고 운영, 이마트의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근거리 배송 서비스, 롯데슈퍼의 로봇 피킹 시스템 등이 그 예이다. 이마트와 롯데슈퍼는 아직 시범·예정 단계이지만 빠르게 현장에 적용될 것으로 보여 가까운 미래에는 전국 주요 매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스기사3. - 롯데마트 금천점의 3시간 배송 비결>

롯데마트 금천점이 3시간 배송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입지 특수성 때문이다. 롯데마트 금천점은 서울 독산동 롯데캐슬 골드파크 3차 주상복합 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큰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하다 보니 고객이 특정 지역에 편중돼 빠른 배송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좁은 배송권역만으론 3시간 배송이 불가능하다. 롯데마트 금천점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QR코드 기반 장보기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 구매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QR코드 기반 배송 요청 주문은 우선권이 부여돼 1시간마다 배송 배차가 이뤄진다. 늦어도 3시간 안에 배송이 가능한 것이다. 롯데마트는 금천점과 비슷한 환경인 지점부터 3시간 배송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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