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조직문화는 기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조직문화 혁신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많지만, 눈에 띄는 성공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본다. ◀
매년 초 기업들의 신년회 단골 이슈는 ‘위기’입니다. 혁신 구호와 함께 신사업에 대한 구상들이 쏟아져 나오는 배경입니다. 하지만 혁신은 말과 달리 어렵습니다. 제도를 정비하고 규정을 만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기업은 본사 직원식당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점심시간인 낮 12시 이전에 밥 먹으러 오는 직원을 적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근무 생산성을 높이려는 의도였다면 심각한 오산입니다. 오히려 조직의 낡은 생각을 널리 드러내는 일일 뿐입니다. 전 직원의 해병대 극기훈련이나 산악행군으로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세상이 아닙니다. 위기는 혁신으로 풀어야 합니다. 수직적 위계 구조에서 나오는 명령은 더 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관건은 조직문화입니다. 결국 경영진, 즉 리더의 상상력이 핵심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우리 대기업들에서도 기업문화 혁신 작업이 한창입니다. 엄숙한 장례식장 같은 임원실을 없앤다며 사무실을 재배치합니다. 임원과 일반 직원들을 한 공간에서 근무토록 하는 겁니다. 의사결정이 빨라졌다는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옵니다. 한화그룹에선 조직문화 혁신의 일환으로 ‘유연근무제’와 ‘승진휴가제’를 도입했습니다. 하루 4시간, 주당 40시간만 지키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과장, 차장, 부장 등으로 승진 때마다 한 달 동안 안식월을 받아 재충전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한화뿐만이 아닙니다. 직상급자에 한한 릴레이식 보고가 아니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동시 보고를 도입하는 등 많은 기업들이 기업문화 바꾸기에 속속 동참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의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효율’이 경쟁력이었던 산업화 시대를 ‘표준’과 ‘속도’를 앞세워 헤쳐왔던 삼성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체제론 창의 중심의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감에 삼성은 새로운 제도들을 잇달아 도입했습니다.
직급체계도 단순화하고 호칭도 ‘○○○님’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른바 ‘실리콘밸리식 기업’으로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2018년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발표한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2차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87.8%가 기업문화 변화가 미흡하다고 답변했습니다. 2년 전 1차 진단 후 개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였습니다. 조사대상자였던 직장인 2,000명 중 79.8%가 문화 개선 효과 체감 여부에 대해 부정적 응답을 내놓았습니다.
기업문화 개선활동 평가 항목도 미흡하다는 답변이 대다수였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조직문화 건강도가 지난 2년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낙제점이라는 얘기입니다. 특히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 비합리적 성과관리, 리더십 역량 부족에 대한 지적이 두드러졌습니다. 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리서치 결과들도 대동소이합니다. 우리회사 문화는 긍정적이라는 문항에 대한 동의율은 민망할 정도로 낮습니다. 강압적 의사전달과 폐쇄적인 소통, 사내 편 가르기, 성과 위주 업무 시스템, 서열 중시 문화 등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대답들이 이어집니다. 이런 꽉 막힌 조직문화 때문에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이직을 고려합니다. 퇴사하겠다는 직원들을 면담하는 리더들은 항상 물어봅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회사를 관두려는 이유가 뭐야?” 돌아오는 질문은 뻔합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칩니다.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는 너 때문에 퇴사하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오죽하면 “직장인 65%는 연봉 인상보다 상사의 해고를 원한다”는 얘기가 나올까요. 리더들만 모르는 직원들의 진짜 퇴사 이유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너나없이 조직문화 혁신에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흔치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조직문화 혁신이 과제가 되면서 CEO 직속으로 태스크포스 팀이 만들어집니다. 조직문화 혁신과 관련한 주요 지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일정을 잡는 게 태스크포스 팀의 일입니다. 타사나 외국 성공사례나 우수사례를 발굴해 사내에 전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는 보고입니다. 과제 추진 및 목표 달성과 관련한 보고서 작성 말입니다. 대다수 대한민국 기업들에서 보고서는 한번 작성하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윗선에 1차 보고된 보고서는 윗선의 의중을 담아 다시 수정 보고해야 합니다. 그 수정 보고 작업이 마치 쳐낸 탁구공이 다시 돌아오듯 수 차례 이어집니다. 뭔가 가시적인 결과물도 있어야 하니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 조직문화 개혁안 선포식 행사입니다. 이제 중요한 건 조직문화 혁신이 아닙니다. 선포식 행사의 성공 여부입니다. 실제 업무현장에서 혁신을 빚어내야 할 직원들은 이 행사의 들러리로 다시 동원됩니다. 태스크포스 팀은 행사의 헤드 테이블에 앉을 사람들 명단을 정리하며 전화를 돌립니다. 물론 행사 참가 복장도 신경 써야 합니다. 혁신 없는 기업문화 혁신의 현주소입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제대로 된 혁신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막상 창의력이 중요하다니 창의력 학원에 보내는 꼴입니다. 창의력은 그렇게 키워지지 않습니다. 아이의 호기심에 불을 지펴줘야 합니다. 조직문화 혁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문화’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하나의 문화가 단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이유가 이 설명에 녹아 있습니다. 규정과 제도는 금세 만들고, 없애고, 바꿀 수 있지만 문화는 다릅니다.
B기업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된다며 조직문화 개선 실험에 나섰습니다. 이와 관련해 모 매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곡성>의 명대사가 생각났습니다. “뭣이 중헌디~.” 그깟 제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얘기했습니다. 창의 문화라서 반바지를 입는 게 자연스러운 거지, 반바지 입는다고 창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휴가제도가 없어서 휴가를 못 가는 게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문화적 숙성 없이 설익은 규정부터 만들어 놓으니 ‘반바지 열사’라는 신조어가 생겨납니다. ‘누가 감히 가장 먼저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 거냐’라는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조직문화 혁신의 관건은 그래서 리더십입니다. 리더가 바뀌어야 팔로어가 보고 배웁니다. 그 과정의 반복과 순환 속에서 문화가 서서히 뿌리를 내립니다. 반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핵심은 재미를 바탕으로 한 창의와 개성, 자율과 책임의 조직문화입니다. 반바지는 창의 문화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일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웃어야 회사도 웃을 수 있습니다. 리더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조직문화, 이제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쟁력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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