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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인터뷰 ¦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대표

네트워크 시장 개척한 글로벌 절대 강자

장비 판매서 보안 솔루션으로 진화했다

<이 콘텐츠는 포춘코리아 FORTUNE KOREA 2019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울시 강남구 시스코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조범구 대표.




▶시스코 시스템즈(이하 시스코)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IT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한국 인터넷 망 구축에도 큰 역할을 했다. 네트워크 장비로 성장한 시스코는 현재 디지털 네트워크 보안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한국 법인인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이하 시스코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대표를 만나 관련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시스코코리아 본사 로비는 조금 소란스러웠다. 기술 관련 세미나가 열렸는지 여러 사람들이 사무실을 드나들고 있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변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자와 이를 따라잡으려는 자들의 노력. ICT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시스코가 하고 있는 사업을 대표하는 단어는 ‘네트워킹’이다. 시스코는 서로 다른 컴퓨터끼리 통신할 수 있는 네트워크 장비를 개발하고 구축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아주 거칠게 설명하자면 그렇다. 오늘날 전 세계 데이터 트래픽 중 80% 이상이 시스코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사용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한 컴퓨터 통신은 1969년 인터넷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르파넷(ARPA Network)이 개발되면서 가능해졌다. 하지만 제조사가 다른 컴퓨터끼리는 직접 통신할 수 없었다. 각 컴퓨터가 사용하고 있는 통신 방법이나 신호체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제조사가 같은 컴퓨터라도 통신을 하기 위해선 아르파넷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느리고 불편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연구 엔지니어로 재직하며 컴퓨터공학과 시설을 관리하던 레오나드 보삭과 같은 학교 경영대학원 컴퓨터 시설 관리 책임자였던 산드라 샌디 러너는 이 같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컴퓨터들이 정보를 주고 받으려면 중간에서 통신 신호를 정리하고 길을 안내해줄 장치가 필요했다. 이들은 결국 서로 다른 컴퓨터 시스템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라우터’를 개발하고 1984년 회사를 설립했다. ‘네트워킹 기술을 통해 정보 공유를 꿈꾼다’는 회사 비전에 따라 사명도 ‘환태평양의 길목’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따온 시스코로 정했다. 로고는 금문교를 형상화해 만들었다.

시스코는 1994년 한국에 직접 법인을 설립해 들어왔다. 시스코코리아는 국내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초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 5대 기간 망 중 하나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초고속 연구망(KREONET), 한국 최초 상용 인터넷망인 데이콤의 보라넷과 KT의 코넷에 장비를 공급한 것이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현재 시스코코리아는 조범구 대표가 맡고 있다. 조 대표를 만나기 위해 로비를 벗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조 대표는 고객사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시스코가 벌이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시스코는 라우터를 개발해 네트워킹 회사로 출발했지만, 사업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우선 저희 회사는 통합 네트워크 솔루션 부문에서 업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영상회의를 위한 장비와 솔루션, 네트워크 개발 사업도 하고 있죠. 이 부문 역시 글로벌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데이터 분석 솔루션과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소프트웨어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네트워크 보안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고요. 과거에는 네트워크 장비가 사업 비중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현재는 50%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소프트웨어와 보안 서비스 분야가 30%를 점유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조 대표는 “5G 통신 시대 개막과 IoT 활성화로 네트워크 접속이 급증해 네트워크 전체의 보안을 책임지는 통합 보안 전략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범구 대표는 시스코코리아 역사에 작은 기록 하나를 세웠다. 그는 시스코코리아 대표를 두 번째 역임 중이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IT업체는 물론, 한국 IT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조 대표는 지난 2009년 5월부터 2년 반 동안 시스코코리아를 이끌었다. 그는 2011년 10월 말 시스코코리아 대표를 사임한 후 삼성전자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조 대표는 말한다. “삼성전자에서 제안이 들어왔는데, 글로벌 기업 본사(삼성전자)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바일과 네트워크 장비 B2B 부문을 총괄하는 자리였습니다. 국내와 글로벌시장에서 B2B 영업과 전략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삼성전자가 통신장비 B2B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그는 2016년 시스코코리아 대표로 다시 돌아왔다. 조 대표는 시스코에 입사하기 전 컨설팅 기업인 액센츄어에서 20년간 근무하며 IT·비즈니스 컨설팅 경험을 두루 쌓았다. 액센츄어코리아에서 첨단전자사업부 대표를 지낸 뒤 아시아태평양지역 첨단전자산업 부문 대표를 겸임했다. 당시 그는 중국·일본을 비롯해 아태지역 가전 소비자전자산업 전반을 총괄했다.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쌓은 조 대표는 시스코가 한국시장에서 다양한 신사업을 발굴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데 적임자였다. 조 대표는 2년 넘게 시스코코리아를 이끌었던 만큼 시스코의 비전과 조직 문화, 파트너 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조 대표는 시스코코리아의 시장 확대 전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016년 시스코코리아에 복귀해보니 새로운 것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글로벌 차원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보안 사업이 시스코 성장을 견인하는 추세였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네트워크 분야 사업 비중이 컸습니다. 그래서 본사 전략을 한국 시장에 적용하기 위해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하는 하드웨어 기업에서 ‘보안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어요. 현재는 매년 3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용 네트워크 보안 시장에 집중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로 세상을 연결하는 시스코는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사진은 시스코 캠페인 포스터.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는 사물인터넷(IoT)과 연결되고, 이는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로 활용된다. 늘어난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5G 통신이 필수적이다. 모든 것이 맞물린 디지털 변화는 네트워크의 급격한 확장을 가속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시스코는 ‘2017-2022 비주얼 네트워킹 인덱스(VNI)’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발생할 IP(internet protocol·송신자와 수신자를 구별해주는 고유의 주소) 트래픽이 인터넷 네트워킹이 시작된 이후 2016년 말까지 누적된 IP 트래픽을 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IP 트래픽은 시스코가 VNI 전망을 시작한 2005년보다 56배 이상 증가해 있다. 연평균 36%씩 늘어난 규모다. 시스코는 이처럼 폭발적인 인터넷 네트워크 성장치를 미리 예측해 차세대 사업과 서비스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국 정부의 통신 시장 정책이나 학술연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스코는 현재 전 세계적인 ‘디지털화’에 맞춰 기업과 도시, 국가들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 대표는 디지털 네트워크 보안을 다시 한번 강조해 설명했다. 그는 5G 통신 시대 개막과 IoT 활성화로 네트워크 접속이 급증하면 네트워크 전체의 보안을 책임지는 통합 보안 전략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ICT 기업들은 이제 보안 취약점을 탐지하고, 해결책에 대한 정보를 모아 처리한 뒤 이를 널리 공유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시스코는 단순히 네트워크상에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수준을 넘어 네트워크 전체가 하나의 방화벽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보호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스코는 전 세계 250명 이상의 보안 전문가, 데이터 과학자, 화이트 해커로 구성된 인텔리전스 그룹을 365일 상시 운영하고 있다. 조 대표는 “탈로스라 불리는 이 그룹이 매일 200억 건에 달하는 사이버 위협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코의 모든 제품은 탈로스가 획득한 사이버 보안 위협 정보를 반영한 아키텍처로 만들어져 있다.

조 대표의 설명은 이어졌다. “국내에는 보안 인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사이버 공격에 대한 체계적인 실전 훈련 역시 거의 없는 상황이고요. 진화하는 사이버 위협이나 전방위적 공격에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죠. 시스코는 사이버 공격에 대한 실전 훈련을 할 수 있는 ‘사이버 레인지(Cyber Range)’ 플랫폼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이버 레인지 플랫폼은 실전 훈련을 위한 IT 인프라, 최신 공격·방어 훈련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 최신 공격 사례를 재현해 침투조와 방어조로 나눠 진행하는 실전 훈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은 최신 공격 패턴 기반의 실전 훈련을 통해 부족한 보안 인력 양성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시스코의 영상회의 제품.


시스코가 오랫동안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의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혼돈이 가득한 ‘하이퍼커넥티드(hyper connected)’ 세상에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시스코코리아는 차세대 사업을 통해 급속도로 복잡해지고 있는 네트워크 서비스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시하고, 또 점점 지능화·조직화하는 보안 위협 속에서 시스코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강조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장악하는 자는 결국 모든 것을 손에 쥘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지금 ‘시스코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스코 성공을 이끈 4가지 전략

시스코는 네트워크 분야 리더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시스코는 이를 ‘개발하고(Build), 사들이고(Buy), 파트너와 협업하고(Partner), 통합(Integrate)한 전략’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Build’는 시스코의 개발 및 서비스 부서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다. 시스코는 전체 매출 중 12.78%(약 63억 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시스코 연구개발의 주역은 2만 1,000여 명에 이르는 엔지니어들이다. 시스코는 이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스코가 운영하는 ‘테크펀드(Tech Fund)’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개발자들이 단기적인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조성해 제품 테스트와 장비 구입 비용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사내 아이디어 교류의 장인 ‘시스코 엑셀러레이트 혁신(Cisco’s Accelerated Innovation)‘ 프로그램도 시작 첫 분기에 아이디어 414개를 접수해 임직원 모두의 혁신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바 있다.

’Buy‘는 시스코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전문가를 흡수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을 뜻한다. 특히 시스코는 빅데이터·애널리틱스, 커넥티드 모빌리티, IoT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스코는 지난 30년 동안 190건 이상의 기업 인수를 진행했고, 그 결과 역시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스코는 기업 인수 때 대상 기업이 시스코와 같은 비전을 가졌는지, 성숙된 기업문화를 가졌는지, 이 거래의 목적이 무엇인지, 인수를 통한 시스코의 비즈니스 전략이 명확한지 등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뒤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진행한 주요 인수 사례에는 인증 보안 기업 ’듀오 시큐리티‘, AI플랫폼 기업 ’마인드멜드‘, 애플리케이션 성능 전문관리 기업 ’앱다이나믹스‘, 클라우드 보안기업 ’클라우드락‘, 클라우드 네트워킹 솔루션 기업 ’머라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업체 ’클리커‘, IoT 플랫폼 업체 ’재스퍼 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시스코는 이 같은 전략적 인수를 통해 미래를 이끌 성장동력을 쌓아가고 있다.

’Partner‘와의 협업은 시스코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시스코 매출의 약 80%는 파트너와의 비즈니스에서 창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시스코는 전 세계 7만 여 개의 채널 파트너사와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시스코는 엑센추어, CA테크놀로지스, EMC, 오라클, SAP, VMware 등 전 세계 유수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Build, Buy, Partner‘ 세 가지 톱니바퀴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윤활유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Integrate‘이다. 시스코는 인수 계약이 무난하게 성사된다 해도 실제로 시스코와 해당 기업의 팀, 문화, 프로세스가 제대로 통합되지 않으면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시스코는 이 같은 ’Build, Buy, Partner, Integrate‘ 전략을 충실히 이행해 시장 주도권 잡기와 건전한 파트너 생태계 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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