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법인을 통해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두 차례 무산된 끝에 마침내 타결됐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긍정적인 기대만큼 사업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광주시는 30일 광주시청 중회의실에서 노사민정협의회를 열고 현대자동차와 그동안 진행한 협상(안)을 심의한 뒤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지난해 12월 최종 합의를 앞두고 무산의 배경이 됐던 ‘임금 및 단체협상 유예’ 조항에 대해 광주시와 현대차(005380)가 절충안을 만들어내면서 의결에 이르게 됐다. 새로운 안에는 ‘임금·단체협약 유예’ 조항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대신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법에 따른 노동활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단서조항으로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 기존 합의 내용도 포함됐다. 현대차는 이 안건을 검토해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막판에 무산됐던 지난해 12월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바뀐 내용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타결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시는 31일 오후 광주시청 1층 로비에서 노사민정 대표와 시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현대차와 투자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기대도 크지만 우려도 많다. 광주형 일자리는 미국 제네럴모터스(GM)의 새턴 프로젝트와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를 본뜬 실험모델이다. 노동자 임금의 일부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두 회사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과 현대차의 입장은 다르다. 완성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매력적이고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는 모델이지만 GM이나 폭스바겐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 간 합의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먼저 제안한 프로젝트다.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난 2014년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공약에서 시작됐으며 2017년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본격화됐다. 정치권에서 제안된 만큼 외부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광주시 지분도 21%로 현대차(19%)보다 많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투자자인 현대차보다 노동계에 대한 배려와 정치권의 의도가 먼저였다”며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이런 구조가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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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도 모호하다. 광주형 일자리로 신설되는 공장에서는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대 생산하기로 했다. 문제는 국내 상황이다. 경차가 잘 팔리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 경차는 외면받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경차는 12만7,431대로 전체 판매량의 9.8%에 불과하다. 반면 중·대형은 31만대가량으로 30% 이상을 차지했다. 이런 시장에서 경형 SUV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일본 스즈키 ‘짐니’나 마쓰다 ‘플레어 크로스오버’ 등의 경형 SUV를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해외 수출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4,000만원 안팎의 임금은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해외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현대차는 이들의 반대부터 무마해야 한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이미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악화된 현대·기아차 입장에서 노사관계 악화는 치명적이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31일 대의원 및 집행부 등 확대 간부 파업을 실행하고 광주시청에 항의방문하기로 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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