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소위 ‘산 증인’이라는 수식어를 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꽤 오랜 기간 한 분야에 몸담으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시간과 성과를 통해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얼굴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산 증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주 NXC 대표는 10조 원 규모로 성장한 대한민국 게임업계의 ‘산 증인’으로 손색이 없다. 1994년 넥슨을 창업한 후 25년 동안 국내 게임업계의 리더로서 시장을 이끌어 왔다.
그런 김정주 대표가 최근 갑자기 자신이 만들고 키워온 넥슨을 매각하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지금 이 시점에 잘 나가는 넥슨을 팔려고 하는 걸까. 포춘코리아가 넥슨과 함께한 김정주 대표의 지난 25년의 여정을 살펴보고, 그가 왜 넥슨 매각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과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필자가 경험한 에피소드 하나. 8년 전인 2011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꽤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몇몇 플랫폼 스타트업의 홍보팀 친목 모임에 참석했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 회포를 풀었는지 같은 회사 식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이어가던 중, 한 홍보팀장이 화장실을 가던 필자의 팔을 붙잡았다.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던 그는 부탁할 게 하나 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대표께서 꼭 만나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데, 업종도 다르고 아직 업계 네트워크가 약해서 도통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혹시 다리 좀 놓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존경받는 게임업계 1세대 기업인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았을 때 당황스러움보단 궁금증이 더 컸다. 그 대표 역시 당시 스타트업 업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던 젊은 사업가였다. 8년이 지난 지금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플랫폼 대표이자 혁신 멘토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가 기자에게 부탁할 정도로 애타게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가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은 바로 게임회사 넥슨의 김정주 대표였다. 이유를 묻자 그 홍보팀장은 ‘자세히는 모르겠다’면서도 나름대로의 추측을 얘기해주었다.
“조만간 저희 회사가 새로운 사업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신규 사업은 아니고, 기존 사업을 좀 더 광범위하게 확장한다는 내용인데요. 발표 전 평소 멘토처럼 생각했던 김정주 대표에게 이와 관련된 자문을 구하고 싶으신가 봐요.” 결론적으로 그 젊은 대표는 김정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사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직접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아니었지만, 접점을 찾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했다.
기자가 과거 에피소드를 소개한 이유는 김정주 대표가 젊은 창업가들에게 어떠한 의미의 선배 창업가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게임업계 1세대 창업가이자 사실상 국내 게임업계의 기틀을 놓은 김정주 대표는 최근 수년간 ‘창업가들이 닮고 싶은 롤 모델’ 리스트 상위권에 줄곧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정주 대표는 비단 게임업계에서만 유명한 게 아니다. 그는 탁월한 전략과 사업수완으로 ‘아이들의 놀이’로만 치부됐던 게임을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게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블록체인, 도서, 지적재산권(IP)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넥슨은 ‘게임 기업’을 넘어 ‘게임 기반의 콘텐츠 기업’으로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게임에 대한 비난과 규제 속에서도 넥슨을 연 매출 2조 원 짜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실력자다. 북미, 중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게임 한류’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한국은 ‘글로벌 게임 트렌드를 이끄는 선도국’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었다.
그만큼 게임업계, 나아가 산업계 전반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과 인지도를 보유한 김정주 대표가 넥슨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건 충격 그 자체였다. 그건 게임업계 산증인이 게임업계를 떠나겠다는 의미였다.
별안간 날아든 이 소식에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 게임업계를 떠나려는 김정주 대표의 의중이 무엇인지 관심이 증폭됐다. 그가 게임업계를 떠나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게임업계 1위 업체 대표, 업계의 상징적 존재가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그는 왜 넥슨을 팔고 업계를 떠나려 하는 걸까. 우선 시계를 25년 전으로 돌려 1994년의 청년 사업가 김정주를 만나보자.
◆넥스트 온라인 서비스를 꿈꾸다
김정주 대표는 1968년생으로 올해 만 50세다. 김 대표가 넥슨을 창업한 때는 그의 나이 24살이었던 1994년. 그는 인생의 절반을 자신이 창업한 넥슨이라는 회사, 나아가 게임업계와 함께 했다.
넥슨이라는 회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청년 김정주가 경험한 ‘한번의 실패’에서부터 시작됐다. ‘부득이한 이유’로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카이스트 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그는 평소 익혀온 코딩 실력을 활용해 ‘프로그램 외주’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경험은 그가 창업에 매력을 느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알려져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게임업계 관계자 A 씨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김 대표는 컴퓨터와 매우 친숙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대학도 관심사를 살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죠. 하지만 유학을 가거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평범한 길에는 약간의 염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선택한 길은 대학원 진학이었습니다. 그 곳에 절친이었던 송재경(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 있었던 것도 큰 이유였지만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로 대학원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이 꼬여버렸습니다. 그래서 김정주 대표는 평소 능력을 살려 프로그램 제작 외주를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그 때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사업의 아이템이 게임이 될 것이라고는 그때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카이스트 대학원에 입학한 김정주는 친구 송재경, 그리고 송재경의 동급생이었던 김상범(전 넥슨 이사)과 의기투합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 강남 인근 작은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 때 지은 회사 이름이 ‘넥스트 제너레이션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를 줄인 ‘넥슨(Nexon)’이었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이 처음부터 게임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홈페이지 제작 대행, 웹에이전시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며 진짜 사업을 위한 트레이닝을 착실히 해나갔다.
그렇게 힘을 키우던 세 사람은 자신들만의 사업 아이템도 찾아 나갔다. 그러던 중 송재경의 제안으로 ‘그래픽 머드 게임’ 개발을 하게 됐다. 당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내에선 텍스트로 대화를 하며 진행하는 ‘머드(MUD)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세 사람은 여기에 ‘그래픽’을 가미해 좀 더 생동감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임이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으로 불리는 ‘바람의 나라’다. 만화가 김진의 작품 ‘바람의 나라’에서 모티브를 얻어 개발한 바람의 나라는 국내 PC통신 유저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넥슨은 본격적으로 게임 회사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크레이지 아케이드’, ‘마비노기’ 같은 자체 게임을 개발하고, ‘흙속의 진주’ 같은 게임 개발사를 인수해 성장 동력을 이어나갔다. 넥슨의 ‘퀀텀점프’를 이끌었던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등도 모두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성공시킨 게임 콘텐츠였다.
넥슨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넥슨은 창업 17년 만인 지난 2011년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매출 1조 원 클럽 가입’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그 후 6년이 지난 2017년에는 매출 2조 원을 돌파하며 명실공히 ‘국내 1등 게임사’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갑작스런 매각 이유는?
국내 게임업계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며 리더십을 발휘해온 김정주 대표가 갑작스럽게 ‘넥슨 매각’을 발표한 건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김정주 대표가 왜 이 같은 폭탄선언을 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자.
김정주 대표의 매각 선언 이후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매체, 업계 관계자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크게 ▲게임업계에 대한 지나친 규제와 개인적 문제로 인한 피로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자발적 선택 ▲사업가로서의 전략적 매각 등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추론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이는 김정주 대표가 지난 25년간 넥슨을 경영하면서 보여주었던 전략과 행동, 그리고 말 속에서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다. 우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는 ‘규제와 피로감’에 대해 들여다보자.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국내 게임업계는 지난 수년 동안 정부의 ‘게임 규제’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다.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문화수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게임 산업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실제로 게임을 ‘4대 중독’ 중 하나로 규정하는 법안이 발의되는가 하면, 2010년에는 밤 10시에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강제 차단하는 ‘셧다운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심지어 게임 중독·과몰입 치료를 위한 부담금을 게임사에 징수하는 것도 논의된 바 있다. 대다수 주류 언론에서도 게임 산업의 가능성 대신 ‘게임의 부작용’을 강조하는 뉴스를 쏟아냈다. 게임의 폭력성을 시험한다며 PC방 전원을 내린 모 지상파 방송의 뉴스는 지금도 ‘레전드 기획’으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김정주 대표는 지난 2015년 이른바 ‘진경준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상황을 겪었다.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을 뇌물로 줬다는 혐의였다. 김정주 대표는 무려 2년간의 기나긴 법정 싸움 끝에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이 얽히고 설켜 게임업계에 몸담은 것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지 않았냐는 게 ‘규제와 피로감’을 이유로 드는 근거다. 하지만 스스로 ‘인간 김정주’를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결코 김 대표가 그 같은 이유로 회사를 파는 일을 하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넥슨 초창기를 김 대표와 함께 보냈던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넥슨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들은 그저 넥슨이 무주공산인 게임업계에서 독야청정 편하게 성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창업 멤버, 주요 사업부를 맡았던 핵심 멤버들과의 갈등으로 그들이 회사를 떠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죠. 회사 경영자로서 ‘사람’을 가장 중요시 여겼던 그였기에 멤버들의 이탈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밖에 무수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넥슨을 지켜온 김 대표가 과연 외부적 요인 때문에 사업에서 손을 뗀다? 전 100%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최근까지 넥슨은 게임 규제 등 외부 악재에도 꾸준히 자체 개발 작을 출시하고 신규 퍼블리싱을 진행하는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더구나 김 대표는 매각 관련 보도가 나온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넥슨의 지속적인 발전’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CEO가 게임 사업 자체에 피로감을 느꼈다면 이러한 결과물, 이 같은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도전가’ 김정주를 주목하라
그 동안 김 대표는 경영자로서 줄곧 ‘새로운 도전’에 대한 목마름을 표명해왔다. 암호화폐 거래사이트인 ‘코빗’과 ‘비트스탬프’, 레고 거래사이트 ‘브릭링크’ 외에도 게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아그라스델릭’을 인수하는 등 ‘깜짝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이번 넥슨 매각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선택’이라는 해석은 김정주 대표의 경영 철학과 맞물려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경영자로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전을 통해 넥슨을 성장시켜왔다. 다소 그 선택이 무모하거나 내외부에서 지탄을 받더라도, 그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고(Go)’를 외쳤다.
게임업계 관계자 A 씨는 말한다. “넥슨은 창업 이후 몇 년간 두 가지 사업을 영위했습니다. 하나는 홈페이지 구축 같은 웹서비스이고 또 하나는 게임이었죠. 그런데 우선순위는 사실 인터넷 서비스 분야였습니다. 가시적인 성과와 실질적 매출이 발생했던 인터넷 서비스와는 달리, 게임분야에선 이렇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더구나 유일하게 갖고 있던 게임콘텐츠인 ‘바람의 나라’마저도 제대로 서비스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가지 사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다가왔습니다. 그 때 김정주 대표는 망설임 없이 ‘게임’을 선택했어요. 막연하지만 ‘바람의 나라’가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게임시장에서 승부를 보고 싶다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 같은 도전정신은 25년간 넥슨을 성장시켜온 김정주 대표의 핵심 경영철학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넥슨 매각’이라는 선택을 한 건 넥슨 창업만큼 중요하고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물론 그 새로운 도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지난해 인수한 유럽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와 국내 거래소 ‘코빗’을 기반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진출할 것이란 말이 돌고 있다. 또 평소 애착을 가져온 ‘넥슨 작은 책방’, ‘어린이 재활병원 사업’ 같은 사회공헌 활동의 확대를 위한 별도 재단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엔젤투자(Angel investment)나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같은 투자자로의 변신, ‘제 2의 창업’이라는 깜짝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정주 대표의 향후 행보는 아직 누구도 속단하기 이르다. 지면을 통해 내놓는 무수한 예측은 요즘 말로 ‘뇌피셜’일 뿐, 김 대표가 스스로 입을 열고, 실행에 옮기기 전까진 정확히 알 수 없다.
김정주 대표는 과거 독특한 행보를 보인 적도 있다.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 캐쥬얼 게임으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지난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예술경영학과 전문가 과정 코스를 밟았다. 당시 그가 밝힌 늦깎이 학생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였다.
◆게임업계 위축은 불가피
김정주 대표의 이번 결정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아마 해당 기업인 넥슨과 그 구성원들일 것이다. 특히 고용 승계와 같은 현실적 불안감이 조직 내에 팽배해지면서 노조 가입을 신청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현재 넥슨 측은 ‘이번 건과 관련해 아직 입장을 발표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넥슨이 실제로 타 기업, 혹은 특정 사모펀드나 컨소시엄에 인수될 경우, 국내 게임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국내 ‘단일’ 기업 중에선 넥슨을 매입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매력적인 매물이라도 시장 가치만 대략 10조 원으로 추산되는 거대 기업을 덜컥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넷마블,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 게임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이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넥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나 관심을 표한 기업은 없다.
현재 업계는 해외 자본의 넥슨 매입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텐센트, 디즈니, EA(Electronic Arts), 블리자드 등 오래전부터 넥슨에 관심을 보여 온 기업 외에도 글로벌 게임사들이 연합한 사모펀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넥슨을 매입한 이후의 상황이다. 넥슨은 그동안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지난해만 해도 전체 매출 2조 원의 70%인 1조4,000억 원 이상을 중국 시장을 포함한 해외에서 올렸다. 특히 중국이 해외매출의 70~80%가 나오는 넥슨의 알짜배기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넥슨은 그동안 국내 게임업계 전체의 수출을 이끌어온 기업이다. 지난해 국내 게임업계의 해외 수출 규모는 약 4조 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던전앤파이터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이를 정도로 넥슨의 비중이 큰 상황이다. 이처럼 넥슨의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만약 해외기업에 매각된다면 국내 게임시장의 글로벌 행보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역시 이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번 김정주 대표의 지분 매각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구도 그의 선택을 막을 순 없다. 매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적어도 그 결과가 최악보다는 차악이길 바라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매각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지난 2008년 게임업계의 큰 이슈 중 하나였던 ‘디즈니의 넥슨 매입 제안’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디즈니는 ‘협업’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강조하며 넥슨에 매입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교수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넥슨이 매각 된 후에도 변함없이 국내외 사업의 주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넥슨이 자사를 인수한 모기업과 함께 ‘파트너’ 관계로 사업을 운영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가 성사되기 위해선 게임 사업부의 부분 매각이나 사업부 분할, 독립법인 신설 등 선결 과제가 이행돼야 하죠.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만약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면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기다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초부터 김정주 대표와 NXC는 도이치증권과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내세워 주식 매각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르면 2월 초 예비 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과정이 어떻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올해 중에는 넥슨이 새 주인을 맞이할 것이란 점이다.
넥슨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거대 게임사다. 국내외 게임업계에서 갖고 있는 상징성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런 넥슨의 매각은 분명 게임업계, 나아가 문화콘텐츠 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선택은 오롯이 김정주 대표의 몫이다. 1세대 게임인(人)이자 국내 게임업계의 큰 형님이었던 그의 선택이 향후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넥슨의 무모했던 도전, 게임업계의 표준 됐다◀
일부 국내 게임유저들 사이에서 넥슨은 ‘돈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돈슨은 화폐를 뜻하는 ‘돈’과 넥슨의 합성어다. 코 묻은 돈까지 뽑아간다는 비아냥 섞인 단어이긴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넥슨이 수익모델을 잘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넥슨은 전 세계 게임업계 최초로 ‘부분유료화’라는 수익모델을 도입해 운영한 회사다. 이전까지 전 세계 게임업계의 주요 수익모델은 ‘패키지 게임(CD 혹은 플로피디스켓에 게임을 내장한 것)판매’와 ‘정액요금제(온라인 게임에서 매달 일정 요금을 내고 게임을 즐기는 방식)’였다.
사실 처음 넥슨이 시도했던 요금제는 ‘PC방 유료화 정책’이었다. 자사의 캐쥬얼 게임 ‘퀴즈퀴즈’를 PC방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이를 운용하는 PC방에겐 PC 한 대당 5,000원 남짓의 월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PC방 업계가 반발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업주들이 퀴즈퀴즈 프로그램을 삭제하거나 접속을 막았다. 자연스레 사용자들의 접속도 줄어들었다. 그 결과 유료화 직후 접속자 수가 이전 대비 7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새로운 수익모델 마련에 고민하던 넥슨은 ‘부분유료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게임은 무료로 즐기되 게임 내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이템을 구매한 사람이 무조건 승리하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게임 내 밸런스가 무너지는 사례가 계속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이후 넥슨은 밸런스 확보에 집중했다. 그리고 캐쥬얼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부터 비로소 안정적인 부분유료화 모델을 적용할 수 있었다. 물풍선·우주선 방지 아이템부터 다양한 기능을 가진 카트 캐릭터를 유료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전의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아이템보다는 유저의 카트 조작 능력이 우선시 될 수 있도록 밸런스를 적절히 조절했다.
결론적으로 카트라이더의 부분유료화는 게임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후 넥슨은 다양한 게임에 부분유료화를 도입했고, 이를 본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도 자사 콘텐츠에 부분유료화 모델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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