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형식적·상징적 주주권행사’에 나서면서 한진(002320)그룹의 기업가치 개선을 외치며 등장한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도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연금을 통한 주주권 강화”를 천명해 오는 3월 한진칼(180640) 주총에서 국민연금과 여론을 등에 업고 표 대결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단기간에 목표 달성이 힘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큰 우군으로 평가됐던 국민연금이 소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다만 3%룰에 따라 감사 선임을 요구하는 등 KCGI가 요구할 카드가 남아 있어 승부를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CGI와 한진그룹은 이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결론이 난 후 신중한 분위기 속에 내부적으로 향후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KCGI는 한진칼 3대 주주인 국민연금(7.34%)이 대표이사 해임과 같은 강한 어조의 주주권 행사 의사를 밝히면 보다 쉽게 각종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정관변경이라는 형식적 의미로 결론이 나면서 상황이 불리하게 됐다.
다만 KCGI 입장에서는 아직 완전히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KCGI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한진칼의 경영권 장악이 아닌 경영 참여를 천명해왔다. 이사회 구성원인 사외이사와 감사인만 교체해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KCGI는 지난달 31일 사외이사와 감사인 후보를 제안했다. 상법상 감사 선임과 해임은 주주가 3%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도 3%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3%룰에 따라 한진칼 조양호 회장 등 최대 주주 측 지분율은 14% 정도로 계산된다. KCGI(3%)가 제안한 감사를 국민연금(3%)이 찬성하고 소액 주주들이 나선다면 아직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최근 대한항공(003490) 노조 등을 중심으로 KCGI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구조조정 등을 할 수 있다며 반대 여론이 커지는 점 등은 부담이다. KCGI가 대한항공을 일본 JAL과 비교한 것을 두고 대한항공 내 여론이 나빠지자 오해라는 취지의 설명자료를 낸 것도 이런 배경이다. 대주주 중 한 명인 KCGI가 사외이사나 감사를 직접 추천한 것도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보고서 역시 부담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형식적인 기조로 가겠다고 결정한 만큼 올해 주총에서 KCGI가 제안한 사외이사나 감사 선임에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국민들이 낸 돈이 행동주의 펀드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사용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날 한진그룹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결정 이후 3시간여 만에 짧은 입장 자료를 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정도가 약하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논란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이기다. 입장 자료 역시 경영 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국민연금이 형식적 주주권 행사 기조를 정한 만큼 3월 주총에서는 사실상 한진그룹 측이 유리할 것”이라며 “내년이나 내후년 계속된다면 판세를 장담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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