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대우조선 노조가 한화그룹 실사를 실력 저지한 사례에서 보듯 이번 ‘빅딜’에서도 노조의 동의 없이는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은 동종업계 기업 간 합병이라 두 회사 노조 모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단 피인수기업인 대우조선 노조가 ‘파업’을 언급하고 나선 반면 현대중공업 쪽에서는 ‘실리를 챙기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습 자본인 현대중공업 밑으로 들어가는 이번 인수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지금까지 현대중공업과 정부가 밀실에서 대우조선 거래를 진행해왔지만 이제부터는 대우조선 노조가 당사자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종업계 기업의 인수에서 구조조정은 불 보듯 뻔하고 자본이 없는 노조가 갖고 있는 것은 파업권뿐”이라며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인 대우조선 노조의 현 집행부는 강성으로 꼽힌다. 대우조선의 한 직원은 “현 집행부는 사내 네 개 노조 세력 중 가장 강성이라는 이유로 선출이 많이 안 됐던 것으로 안다”며 “피인수 소식이 알려진 뒤 동요하고 있는 직원들이 노조에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게다가 현 대우조선 노조는 금속노조 집행부와 임기를 맞추기 위해 오는 10월께 노조 선거를 또다시 치를 예정이다. 선거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대우조선 노조는 2008년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추진 당시 조선소 실사를 실력 저지해 인수 자체를 무산시킨 경험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화그룹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게 무산의 결정적 이유지만 노조의 강력 저지가 한화가 물러날 명분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당시 한화그룹은 업종이 다른 기업이기라도 했지만 현대중공업은 다르다”며 “사업이 상당 부분 겹치는 동종업계 기업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진행하려던 현대중공업 노조도 관련 절차를 취소하고 고민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의 한 직원은 “그동안 회사가 어렵다며 떠난 직원이 많은데 무슨 돈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것인지 회사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같은 직원들이 일하는 군산조선소까지 폐쇄한 회사에서 다른 동종업계 기업을 인수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전했다.
다만 인수기업인 만큼 위기감뿐 아니라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 한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은 “회사가 결정한 이상 대우조선 인수를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차라리 이를 계기로 사측과 협상을 잘 이어가서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업황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임단협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내부 회의를 거쳐 향후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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