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가운데 미래 투자를 가늠하는 수입에서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 등의 수입이 급감하면서 지난 1월 전체 자본재 수입액이 21.3%(전년 동기 대비) 급감한 것이다. 자본재 수입 감소는 곧 투자감소와 고용축소를 의미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는 수입 의존도가 각각 70%를 넘는 등 설비투자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성장동력 상실을 의미하는 투자부진은 장기 경기침체의 징후로 해석된다. 2010년대를 마감하는 올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글로벌 재정위기에 이은 또 한번의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과거 위기와 이번 위기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 위기는 주로 외부 충격이 국내 경제에 영향을 준 반면 이번에는 미중 무역분쟁, 자동차 등 제조업 경쟁력 상실, 반도체 경기둔화, 가계부채 누증과 고령화로 인한 소비둔화, 고용쇼크 등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다. 이런 악재는 기업투자, 자산가격 및 물가, 장단기 금리차, 저축행태 등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①자본재 수입·시설대출 급감…투자 꺼리는 기업들=자본재 수입 감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뚜렷해지고 있다. 반도체 장비 수입 증가율은 2017년 137%에 달했지만 지난해 6월 -11.8%로 마이너스 전환하더니 12월에는 -62.4%, 올해 1월에는 -68.5%로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장비 수입은 반도체 장비보다 앞선 2017년 11월 이후 하락 추세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 폭도 -100~-50%로 상당한 수준이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수입 동향에서도 내수부진이 확인된다”며 “자본재 수입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설비투자의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부진은 금융 부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3·4분기 예금취급기관의 시설자금 대출은 전년 대비 9.3% 증가했다. 2010년 4·4분기 이후 첫 한자릿수 증가율이다. 특히 고용과 직결되는 제조업 시설자금 대출금 증가율은 4.1%에 그쳤다. 2016년 2·4분기 한자릿수로 떨어진 후 줄곧 내리막길이다.
②자산가격 하락에 저물가까지=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 탓에 부동산 시장은 악화일로다. 2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한 주간 서울 아파트 값은 0.05% 하락했다. 지난해 11월9일 주간 이후 12주 연속 내림세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거래신고 건수는 1,857건으로 1년 전의 1만198건을 한참 밑돌았다. 2013년 7월 2,118건 이후 최저치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는 내수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건설기성은 전년 대비 5.1% 줄었다.
우리뿐 아니라 글로벌 부동산 시장도 심상치 않다. 외신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 가격 중간값이 3년 만에 100만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호주 시드니 집값은 2017년 고점 대비 11.1% 급락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주요 도시 아파트의 20%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올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를 기록해 1년 만에 1% 밑으로 떨어진 것도 적신호다. 국제유가 하락과 유류세 인하 조치 등이 영향을 미쳤지만 전반적인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③좁혀진 장단기 금리격차=금리도 불황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5월 0.5%포인트에 달했던 장단기 금리차 (국고채 10년물- 3년물)가 2일 0.194%포인트로 좁혀졌다. 장기금리는 향후 물가상승률 전망, 위험 프리미엄 등을 반영해 단기금리보다 높은 것이 정상이다. 이 격차가 좁혀졌다는 것은 경제주체들이 저물가와 경기침체를 예상해 낮은 수익률을 감수하면서 장기채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④돈맥경화=돈을 경제활동에 사용하기보다는 은행에 맡겨두고 노후 등 미래에 대비하려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2016년 예금은행의 총예금 증가율은 대략 7~8%, 요구불예금 증가율은 10~20%, 저축성예금 증가율은 5%대였다. 거래에 사용되는 요구불예금 증가율이 미래준비 성격이 강한 저축성예금 증가율을 웃돈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이런 현상이 뒤집어져 저축성예금이 더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4분기에는 요구불예금 증가율이 2%에 그쳤다. 돈이 거래에 활용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도 저조한 수준이다. 경제주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은이 올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표만 보면 금리를 내려야 할 때”라며 “하지만 한은은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면서 관망 모드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능현·임진혁·강광우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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