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달라졌습니다. 무슨 얘기냐구요? 지금까지 국세청은 가장 폐쇄적인 권력기관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국회에서 시민단체에서, 그리고 언론의 평가가 그랬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때의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과 관련된 이현주 DW커리어 대표 일가에 대한 보복성 정치 세무조사가 대표적입니다. 내부 행정도 지극히 폐쇄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죠. 그랬던 국세청이 변하고 있습니다.
직원평가 때 세무조사 실적 안 본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평소 “(국세청이) 내실 있게 많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올 들어 이 말을 입증할 큰 변화가 국세청에서 시도됩니다. 바로 조사국 조사팀 평가 때 추징세액 같은 세무조사 실적을 보지 않기로 한 겁니다. 국세청 내부 평가가 뭐가 중요하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국세청의 핵심은 조사국입니다. 날고 기는 기업들도 세무조사에 벌벌 떱니다. 지금까지 국세청은 조사국 조사팀을 평가할 때 조사실적을 20%가량 배정해왔는데요.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추징세액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승진도 하고 좋은 보직을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세청 직원들은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무조사를 해서 누가 더 많이 거두냐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에 대한 불똥은 국민들에게 튑니다. 추징세액이 많기 위해서는 납세자 입장에서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죠. 상황에 따라서는 무리한 세무조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2017년 기준 국세청이 법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는 5,147건에 부과세액은 4조5,047억원에 달합니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조사국 조사팀 근무평가 때 추징세액 같은 조사실적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정성평가를 도입하는데요. 우수 사례를 내도록 해 이를 5~6등급으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와 연동해 조사절차 준수 같은 절차 항목의 배점은 높입니다. 국세청은 올해 전체 지방청의 절반가량을 대상으로 시범 시행한 뒤 내년부터 이를 전면 도입합니다.
평가방식 전환은 납세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세무업계의 해석인데요. 국세청은 올해부터 불복사건이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하면 당초 과세했던 직원 평가 시 불이익을 주기로 했습니다.
국세기본법에 세무조사 독립 조항 명문화 필요
국세청은 세무조사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국세청의 의뢰로 한국세무학회가 지난해 말 작성한 ‘세무조사의 독립성 확보 조항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을 보면 국세기본법에 세무조사의 독립성 확보 조항을 신설하고 적용 대상에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행정부 고위공무원, 청와대 직원, 국회의원 및 의원실 직원을 포함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요.
국세기본법상에 독립성 조항이 명문화돼 있어야 국세청이 외풍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에는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야 실질적인 독립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아직은 국세청과 용역기관인 세무학회의 아이디어 수준입니다. 실제 현실화하는 데도 넘어야 할 산이 많죠. 그럼에도 국세청의 치열한 고민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달에는 현장확인 출장증에 출장 목적이 ‘세무조사가 아님’을 밝히는 내용의 사무처리 규정 개선안을 내놓았고 세무조사 범위의 확대사유도 제한하기로 했는데요. 교차세무조사(관할지역이 아닌 다른 청의 조사)는 조만간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추가 제도개선을 시행합니다. 국세청은 지난해 4월 외부에 공개하는 조사 규정에 권한 남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교차세무조사의 절차와 범위를 처음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모두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세무조사와 과세당국의 권한남용을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지난해 세법개정에서 논란이 됐던 세무조사 녹음권 도입은 올해 기재부와 실태조사를 벌입니다.
한승희 취임 후 내부회의 공개하고 납세자 돕고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조세불복 사건을 다룬 국세심사위원회를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국세심사위원회는 정부가 부과한 세금의 잘잘못을 따지는 기구인데요. 1급인 국세청 차장을 위원장으로 국세청 직원 5명, 민간위원 6명이 판정을 내립니다. 6명 이상 결정으로 인용이 나오면 부과된 세금이 취소되고 기각되면 원래대로 과세된다. 국세청이 심사위원회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는데요. 당시 내부적으로 반발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국세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를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기자가 참관해본 위원회는 말 그대로 토론의 장이었습니다. 내외부 위원들의 송곳 질문에 국세청 과세담당 공무원들은 진땀을 흘렸습니다. 특히 국세청 내부위원들도 같은 식구라고 절대 봐주지 않았습니다. 첫 공개회의 때 내부위원으로 참석했던 이동신 당시 국세청 자산과세국장(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내부 외부 가릴 것 없이 위원들이 과세를 한 직원 또는 납세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말뿐이 아니라 국세청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납세자와의 소통창구도 넓히고 있는데요. 지난달에는 납세자의 세금 관련 고충을 현장에서 즉시 해결할 수 있게 돕는 ‘납세자소통팀’을 본청에 신설했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본청에 납세자보호위원회를 설치하고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외부 위원으로 채웠습니다. 납보위는 부당한 세무조사 중지와 조사팀 교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세정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지난해 어려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569만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검증을 올해 연말까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체납액 납부의무 소멸제도와 근로장려금(EITC) 지급 홍보업무도 강화하는 중입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는데요. 지난해 1월 국세행정개혁 태스크포스(TF)는 국세행정 개혁과제 50건을 내놓았는데 한 청장 체제 아래서 빠르게 집행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 청장 취임 이후 국세청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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