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18일 발표한 ‘개인채무자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방안’은 이전 빚 탕감 정책들과 달리 금융회사가 회수 가능한 미상각 채권에 대해서도 원금을 탕감해주는 방안이 포함됐다. 즉 소액 연체에도 빚 수렁에 빠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취약계층을 구제해준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 논란이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위의 개선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취약계층 채무자(최근 6개월 이내 실업자 등)가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면 미상각 채무에 대해서도 최대 30% 범위에서 채무원금 감면이 허용된다. 채무자의 채무 과중도에 따라 0~30% 범위에서 감면율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다.
그동안의 채무감면제도는 금융회사가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장부상 손실로 처리하는 채권 상각분에 대해서만 감면해줬다. 상각 채권은 통상 연체 후 6개월에서 1년 경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의 주요 골자가 채무자가 연체 전 및 연체 초기에 신용등급 하락을 예방할 수 있도록 ‘신속지원제도’를 도입하는 것인 만큼 그 일환으로 상각 이전의 채무도 감면해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연체 시작 전~연체 시작 30일 이전’ 기간 채무자들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기존에는 연체 후 30일이 지나야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 조기에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6개월 내 실업이나 폐업 등으로 소득이 중단된 다중채무자 6개월간 원금 상환 의무를 면제받고 빚이 지나치게 많아 구조적으로 상환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6개월 원금 상환 유예 이후 최대 10년간 장기분할 상환을 허용하기로 했다.
연체 90일 이상 채무자에게는 본격적으로 미상각 채무에 대한 탕감이 시작된다. 기존 이자를 면제해주는 한편 미상각 채무에 대해 최대 30%까지 감면을 허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장애인, 기초연금 수급자, 70세 이상 고령자들은 소득 및 재산에 따라 상환능력이 없다고 보고 특별감면 프로그램을 도입해 적용할 방침이다.
정부가 이 같은 빚 탕감 대책들을 잇따라 내놓는 것에 대해 다중채무자·저소득자 등을 지원한다는 취지와 달리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가는 이들의 허탈감이 커지고 도덕적 해이 풍토를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각 채권은 물론 미상각 채권의 원금까지 깎아주면 “몇 달만 버티고 돈 안 갚으면 된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미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비중은 늘고 있다. 신복위가 발표한 ‘신용회복지원 실적’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은 10만3,277명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연간 채무조정 신청자 수가 10만명을 넘긴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0만1,714명 이후 처음이다. 신청자 가운데 대부분인 8만9,087명의 채무조정이 확정돼 빚을 감면받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도덕적 해이 발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성실 상환자 비중이 압도적이라며 빚 탕감 대책 추진을 정당화했다. 현재 채무불이행자 중 약 30%가 채무조정제도를 이용하고 10년 이상 장기 연체자의 경우 10% 정도가 신청해 스스로 채무 상환을 해결하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달 14일 한국경제학회 ‘2019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채무조정은 공동보험 형태의 사회안전망”이라며 빚 탕감 정책 시행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스스로 빚을 해결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도덕적 해이 발생으로 인한 그들의 박탈감이 커진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