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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정부 '임시허가 1호'가 '규제 샌드박스' 또 신청한 기막힌 사연

혁신 '전자저울' 그린스케일

규제 권한 쥔 공무원 뒷짐에

정식허가 무산...불법사업자로

수억 손실에 투자도 끊겨...

"공무원 안나서면 규제혁신 공염불"

규제샌드박스 성공 위해선

소관부처 등 공무원 조직

소극적 행정관행 탈피해야

박근혜 정부에서 최초로 규제 ‘임시허가’를 받아놓은 중소기업이 정식허가가 나지 않아 문재인 정부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다시 신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문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규제혁신을 외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규제권한을 거머쥔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시허가 뒤 정식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법령 개정 등 관계부처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담당 부처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을 진 탓에 중소기업 대표는 사실상 불법 사업자 신세가 됐다고 주장한다. 3일 중소업계에 따르면 블루투스 전자저울 업체인 그린스케일은 지난 2015년 10월12일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신속처리 1호 및 임시허가 1호 기업으로 선정됐다. 정부는 신기술 개발의 성공적 사례라며 대대적인 홍보도 했다. 그린스케일의 규제혁신 사례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화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임시허가 기간이 끝나자 정부는 손을 놓았다. 결국 그린스케일은 임시허가 만료일인 2017년 10월11일까지 정식허가를 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31일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데이터 규제혁신 행사장에 참석해 차를 시음하고 있다. 기업들은 문 대통령의 규제혁신 지시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에게 탄원서도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출한 탄원서는 감사원에 이첩됐지만 2월 감사원으로부터 “감사 사안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린스케일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 개발한 제품인데 생산을 못한다는 말인가. 눈물이 났다”면서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오기가 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시 규제 샌드박스를 두드렸다. 그린스케일은 문재인 정부가 1월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하자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서를 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시 임시허가라도 받아야 영업을 하고 투자자 모집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스케일이 개발한 블루투스 전자저울은 농산물에 대한 전자저울 측정값을 블루투스로 스마트 기기에 전송하고 데이터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저장·관리·분석하는 기술이다. 농가는 전자저울에 최종 작물을 올려 무게를 재는 동시에 생산과 재고 파악을 할 수 있다. 소비자는 언제, 어디서 생산한 농산물인지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그린스케일은 정식사업을 위해 국가기술표준원과 농림축산식품부의 협조를 요청했다. 전자저울은 눈금 값을 공인 관리해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조작하면 처벌받도록 규제하고 있다. 다만 저울과 스마트기기 간 데이터 전송과정에서 수치가 조작되거나 왜곡됐을 때에 대한 규정이 없어 국표원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그린스케일의 주장이다. 그린스케일 관계자는 “국표원은 임시허가 전 신속처리 과정에서 업무 연관성과 새로운 기술규격을 정립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임시허가에 참여했다”며 “임시허가가 종료되자 국표원은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표원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국표원 관계자는 “우리의 업무는 저울의 정확도 관리를 위한 형식 승인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라며 “해당 업체는 2015년 형식 승인을 받았기에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해당업체 주장은 해당 업체만을 위해 새로운 기술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임시허가의 목적은 특정업체를 위한 없던 기술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그린스케일의 민원을 위해 업체 간담회, 글로벌 기준 검토 등도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그린스케일 관계자는 농식품부의 대처도 지적했다. 그는 “처음 미래부와 협의할 때만 해도 농식품부는 농산물 이력추적 시스템 연계 요청에 대한 협조 의사를 내비쳤다”며 “이후 특정 기업의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꼬집었다. 다만 농식품부는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민간 시스템이 이력추적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린스케일 관계자는 “다행이지만 협조 약속 이행에 만 3년8개월이 소요됐다”고 지적했다. 정식허가를 받지 못하자 그린스케일에 대한 투자는 끊겼고 회사는 수억원의 손해를 봤다. 지난해 1월 기술신보와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도 그린스케일의 추가 대출 요청을 거절했다. 임시허가 1호 기업이 투자처조차 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은 소관부처의 소극행정 때문이라는 게 그린스케일 측의 주장이다. 그린스케일 관계자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했고 관련 절차를 그대로 따랐지만 돌아온 것은 공무원들의 책임회피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소극행정은 문 대통령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2월1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적극행정이 정부 업무의 새로운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 내려야 한다”며 “적극행정의 면책과 장려는 물론 소극행정이나 부작위행정을 문책한다는 점까지 분명히 해달라”고 역설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관부처 등 공무원 조직이 규제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죽비 같은 지시였다.

그린스케일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소극행정이라는 말이 언급됐고 국무총리가 신산업 관련 소극행정 사례를 전 부처에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공무원들의 복지부동·탁상행정이 근절되지 않으면 규제혁신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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