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결국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를 위한 청문절차에 돌입하면서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운명은 법원에서 판가름나게 됐다. 관광객 감소로 고민 중인 제주도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걸었던 제주의료관광단지 조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업계에서는 녹지국제병원 측이 일단 개원한 뒤 경영이 악화되면 진료 대상이나 영역 확대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빗나갔다. 녹지 측은 병원 문을 열지 않고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을 기대하거나, 소송에서 질 경우 제주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안 등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녹지그룹이 병원사업을 철회하면 800억원에 이르는 투자금을 손해배상 명목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도는 청문을 통해 녹지국제병원의 사업자인 녹지그룹 측의 입장을 듣고 합당한지를 따진 뒤 최종적으로 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도는 5일부터 청문이 시작되면 한 달 정도 뒤에 모든 과정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청문과정의 핵심 쟁점은 ‘외국인만 대상으로 한 조건부 개설허가’, 다시 말해 내국인 진료를 못하게 하는 게 적법하고 적절한가 여부다.
도는 외국인 전용 영리병원으로 개원하는 점에 대해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의견을 구했고, 승인 허가도 외국인 전용으로 났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내국인의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까지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제주특별법 등에 따르면 ‘외국 의료기관과 외국인 전용 약국에 대해 이 법에 정하지 않은 사항은 의료법과 약사법을 준용한다’고만 돼 있어 뚜렷한 사유 없이 내국인 진료를 막기 힘들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녹지 측도 “2015년에는 복지부가 내국인 진료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진료대상을 외국인으로 제한한 것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내국인 진료에 대해서도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다. 보건의료산업노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이 참여한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녹지국제병원 허용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한낱 재벌과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되는 의료 민영화·영리화 대재앙의 시작”이라며 “영리병원의 전국적 확산은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만큼 치명적이고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오는 11일로 예정된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공개도 병원의 앞날을 예측하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이 날을 법인정보 자료를 제외한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의 정보공개일로 확정했다.
녹지그룹은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를 승인받은 이후 사업계획서 비공개 방침을 견지해 왔다. 도 관계자는 “병원 사업계획서 공개일이 결정됐으나 그 전에 녹지 측이 정보공개에 반대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사업계획서 공개 절차가 연기되며 공개 여부도 소송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녹지국제병원의 개원이 무산되면 의료관광시설이 주축인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병원이 없는 의료관광단지는 사업 추진의 명분을 상실할 수밖에 없어 사업 무산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앞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지난 2008년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원 153만9339㎡ 용지에 의료시설과 숙박시설 등을 조성하는 내용의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에 착수한 바 있다. /임웅재선임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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