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로페이 확산과 세원 확대를 위해 올해도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추진한다. 하지만 ‘유리지갑’인 월급쟁이들의 반발로 8회나 일몰이 연장됐던 만큼 국회 벽을 넘을지 미지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53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과세·감면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제율을 낮추거나 공제 한도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표 양성화라는 목표가 충분히 달성됐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달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재정개혁보고서에 이어 비과세·감면제도 정비에 대한 운을 띄운 것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신용카드 사용액이 총 급여의 25%를 넘을 경우 급여 초과분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사업자의 탈세를 막고 세원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됐다. 소득공제율은 최초 10%에서 2001년 20%로 상향한 뒤 2005년 15%로 낮췄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소비 촉진을 위해 2008년 20%로 높였고 2013년 15%로 하향했다. 대신 2017년에는 소득구간(7,000만원 이하, 7,000만원~1억2,000만원, 1억2,000만원 초과)에 따라 공제한도를 각각 300만원, 250만원, 200만원으로 차등화했다.
정부가 매년 카드 소득공제 폐지 또는 축소를 추진해왔으나 번번이 여론에 밀려 덮었기 때문에 실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지난해에도 초기 계획과는 달리 국회는 지난해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1년 연장했고 올 연말 일몰될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도 “(축소) 방향성을 갖고 검토를 하나 현실적으로 납세자 반발 문제가 있어 국회에 가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홍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국민이 이걸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있어 급속한 공제축소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난해 11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밝혔던 것보다는 한발 진전됐다.
이는 올해 간편결제 시스템 ‘제로페이’에 대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가 신용카드 공제율을 낮추고 제로페이 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을 고민하기 때문으로 점쳐진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보고서에서 “제로페이가 신용카드와 대등한 결제수단이 되려면 신용카드 소비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의 단계적 축소 등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제로페이는 소득공제율 40%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아울러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줄여 향후 재정 부담에 대비하기 위한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카드 소득공제는 ‘13월의 보너스’인 연말정산시 핵심 공제항목이어서 여론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도 부담이다. 특히 정부가 인위적으로 제로페이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면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카드업계에서는 제로페이에 비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나온다.지난달 조세재정연구원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내용을 담은 토론회를 개최하려다가 연말정산 환급일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해 발표 전날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에서는 올해 세법 개정으로 운을 띄우고 아마 의원 입법을 통해 공제율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납세자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황정원·한재영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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