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같은 친근한 미술관, 개방적인 미술관, 체계적이고 신바람 나는 미술관을 만들겠습니다. 더불어 남북미술 교류협력을 기반으로 분절된 한국미술사를 복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장 공모과정에 대한 논란 끝에 자리에 오른 윤범모(68·사진)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일성이다. 윤 신임관장은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비전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연간 240만 명 이상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아오시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미술관을 지향할 것”이라며 “쉽게 다가가고 대중 눈높이에 맞는 미술관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시도 중요하지만 교육비중과 학술활동을 늘리고 전문가를 위한 담론생산의 현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눈길 끄는 계획은 ‘남북미술 교류’에 관한 내용이다. 윤 관장은 “남북문제는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기에 앞질러 가기는 어렵지만 미술관이 분단극복, 남북 화해 시대에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기여하기를 바란다”면서 “상대편이 있기 때문에 관련 부처 등과의 협조 체제가 중요하기에 점진적으로 본격화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소 냉전체제가 데탕트로 바뀌면서 양국이 첫 번째로 한 사업이 미술교류였을 만큼 미술이 가진 화해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면서 “역사 특수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공간인 DMZ를 생태미술과 평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역할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윤 관장의 선임과정은 코드인사 논란부터 공모 절차 공정성까지 문제가 돼 험난했다. 이에 대해 윤 관장은 “30여 년 미술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됐고, 그 과정에서 언론이 뜨겁게 대해주셔서 놀라기도 했지만 그 비판을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삼아 격려로 이해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최초의 외국인 기관장으로서 ‘미술관의 국제화’를 자신의 미션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윤 신임관장은 “정부(로부터 받은) 미션은 아무 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스스로 ‘전국구 미술평론가’ ‘한국 미술관의 제1호 큐레이터’ ‘미술계 현장 지킴이’로 불리는 별명을 강조한 윤 관장은 “미술의 정체성 수립과 더불어 국격을 높이는데 미술이 일조하기를 바란다는 생각으로 관장직을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윤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유관 기관과 협업체계를 이뤄 시의적 주제를 발굴하고 연구해 전시사업으로 추진하는 등 협업하는 열린 미술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것과 “한국미술 국제화의 교두보 확보를 강화하기 위해 미술관 내 여러 군데로 나눠져 있는 해외담당 업무를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한국미술의 자존심 살리기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 확보 위에서 우리가 한중일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미술담론을 이끌며 국제화,세계화로 나가는 맥락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로서의 경험을 살린 “한국 근현대미술사 통사 정립 사업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수립하겠다”는 내용도 주목을 끈다.
하지만 윤 관장이 해결해야 할 숙제도 산적했다. 지난해 청주관 개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 본관과 서울관, 덕수궁관까지 4개관 체제를 갖추면서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규모의 미술관으로 외연이 커진 것을 어떻게 실속있게 운영할 것인가가 문제다. 일각에서는 4개관 운영의 효율성을 위한 분관장 체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윤 관장은 “접근성이 낮은 과천관은 연구기능 강화와 가족중심·자연 친화의 어린이미술관을 확대 강화할 것이며 이를 위해 직제신설 노력 등 운영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서울관은 관객 수요를 자극하는 국내외 융복합 현대미술 전시를, 덕수궁관은 한국 근대미술문화에 대한 정의 및 연구를, 청주관은 개방형 수장고를 특화한 한국 현대미술 소장품 전시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관장 임명 이전부터 추진중인 미술관 개관 50주년 행사는 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오는 6월에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를 묻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리고 9월에는 ‘광장’을 주제로 한 3관 통합전시가 과천·서울·덕수궁에서 대대적으로 개막할 예정이다. 미술관 대표 소장품 300선을 추린 국·영문 서적도 연내 출간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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