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업체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메모리반도체 실적이 호조를 보이면서 보유 현금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하는 등 대형 인수합병(M&A)에 베팅할 수 있는 실탄이 두둑한데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월 반도체 경기에 대한 우려에 “이제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한 데 이어 비메모리반도체 육성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비메모리 분야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가 경쟁력 있는 업체를 인수해 단숨에 글로벌 1위로 올라서는 전략을 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7일 재계와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1위 회사인 ‘NXP’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NXP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로 시가총액은 약 30조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경우 인수가가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2016년 퀄컴이 NXP 인수를 추진할 당시 얘기가 오갔던 금액도 440억달러 수준이었다.
일단 삼성전자는 NXP의 인수 추진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근 안중현 삼성전자 부사장(사업지원TF)이 미국을 방문하고 손영권 삼성전자 사장(전략기획담당)이 릭 클레머 NXP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것을 두고 NXP 인수를 위한 작업이라는 보도에 이례적인 해명자료까지 냈다. 삼성전자 측은 “미국 방문은 2년 전 인수한 하만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일 뿐 ”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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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성전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반도체 업체 인수 가능성에 점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경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NXP의 차량용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12.5%로 1위다. 이어 독일의 인피니온(10.9%)과 일본의 르네사스(10.0%), 미국의 텍사스인스투르먼츠(8.0%),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법인인 ST마이크로(7.1%)가 뒤를 잇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인피니온과 ST마이크로는 2017년부터 합병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이 사실상 접근할 수 있는 M&A 매물이 NXP뿐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7년 퀄컴이 NXP를 인수를 시도했을 때도 인수전에 뛰어들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퀄컴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경쟁력 있는 회사인 만큼 삼성전자도 적극적으로 인수 가능성을 타진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근 삼성그룹 전체적으로 전장 관련 사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도 이번 인수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우선 삼성전자는 2017년 하만을 인수해 전장 사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전자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를 생산하는 삼성전기는 최근 정보기술(IT)에서 전장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또한 삼성SDI도 차량용 배터리 사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전장 반도체 부문에서는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경우 현재 삼성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NXP 인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시너지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이라며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B2B이기 때문에 판로 확보와 네트워크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M&A설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말에 보유한 현금(연결재무제표 기준)은 104조원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유 현금이 워낙 많다 보니 주주들의 주주환원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주주환원과 함께 미래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도 M&A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실제 삼성전자는 NXP뿐만 아니라 최근 매물로 나온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고병기·김상훈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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