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모에 따라 차별적인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은 이제부터라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 새로운 대기업이 탄생합니다.”
강호갑(65·사진)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12일 제10대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장탄식을 쏟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강 회장은 “일례로 ‘연 매출 3,000억원 이하’ 같은 기준을 정하고 기업을 차별하는 제도가 많은데 그 기준이 자연법칙은 아니지 않냐”면서 “인위적 기준에 따른 차별을 없애야 삼성과 현대차·LG 같은 대기업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견기업 가운데 연 매출 3,000억원이 넘지 않는 기업은 관련 시행령상 특례 조항에 따라 중소기업과 똑같은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지만 3,000억원을 초과하는 순간 혜택이 사라진다. 이 같은 기업 규모별 차등 제도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중견기업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강 회장은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고잉컨선(going concern·계속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투자와 지속성장·지속고용과 함께 기업가정신이 유지돼야 한다”면서 “그런데 요즘 같은 때는 과연 (산업계에) 기업가정신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농어업을 예로 들면 경제 쪽에서는 농업과 어업이라는 업(業)만 보는데 (표가 중요한) 정치인들은 농민과 어민의 숫자만 생각한다”면서 “서로의 목적과 시각이 달라서 그런 건데 두 가지 모두 존중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 정책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그는 “(경제와 정치 중) 어느 한쪽을 누르거나 잘못되게 하면 농업과 어업, 농민과 어민 모두 잘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강 회장은 가업승계 지원이 부족한 것도 새로운 대기업의 탄생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65%인데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 양도소득세 22%를 또 내야 한다”며 “이래서야 100년 장수기업이 생겨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금융투자 업계에서 저를 찾아와 승계를 포기한 기업 좀 소개해달라고 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실제로 많고 이러한 기업들을 인수해 차익을 얻는 투자 모델까지 성행한다는 얘기다.
강 회장은 작고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마지막 저서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을 최근 감명 깊게 읽었다며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그는 “호킹은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옛 이론들을 깨부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수정·보완·발전시켜 블랙홀 이론 같은 엄청난 새 이론을 만들어냈다”며 “한국 사회도 그러한 방식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지난달 27일 3년 임기의 제10대 중견련 회장에 선출됐다. 이미 연임했지만 회원사들이 요청에 따라 회장직을 다시 수락했다. 강 회장은 “중견기업이 기업가정신을 유지하고 기술을 개척해나가는 발판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것이 회장으로서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전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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