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잠잘 때 외에는 시가를 입에서 떼지 않는 애연가였다. 그를 찍은 사진 속에는 대부분 시가가 등장한다. 사립 기숙학교 출신에 어려서부터 외로움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에 가까웠던 그는 2차 대전 중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로 비치기 위해 시가를 문 모습을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로 자주 활용했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말한다. 사람을 의미하는 영어 ‘퍼슨(person)’이나 ‘성격(personality)’의 어원도 페르소나다. 심리학자 칼 융이 사용해 보편화한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이나 의무에 맞춰 자신의 원래 모습 위에 덧씌운 사회적 인격을 뜻한다. 융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과거 배우들의 전용물이었던 페르소나는 현대 정치인에게 중요 도구가 됐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자유 민주주의 페르소나를 사용했고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페르소나로 신중국을 이끌었다. 협상의 달인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원하는 딜을 성사키기 위해 미치광이 페르소나를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협상 상대방에게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해 결과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유도하는 전략을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다고 비꼰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과거 구소련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신이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불안정하고 성급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광인 페르소나를 활용했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출현시키는 배우를 뜻하기도 하며 대리인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새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를 다음달 12일 발매한다. ‘맵 오브 더 소울’은 ‘영혼의 지도’라는 뜻이다. 분석심리학 기초를 세운 융의 페르소나 이론을 융 전문가 머리 스타인 박사가 풀어쓴 해설서 ‘융의 영혼의 지도’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5월과 8월 선보인 앨범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은 전작 ‘러브 유어셀프’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임을 노래했다.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한 방탄소년단이 만들어 가는 자신들의 페르소나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크다./홍병문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