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 경영 부실 등으로 예금을 상환할 수 없는 사태를 대비해 각 금융권으로부터 예금보험공사가 걷어가는 예금보험료를 인하하거나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보험사의 파산·지급불능과 같은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은 낮아졌는데 내는 예보료는 20년째 그대로라며 현실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저축은행업계도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의 실적과 재무 건전성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은행보다 5배나 높은 예보료를 내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예보료 인하는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이 취임과 함께 공론화하자 보험업계까지 가세하면서 공론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용길 생명보험협회 회장은 19일 광화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예보료 현실화’를 꺼냈다. 그는 “예보료 부과기준이나 목표기금 규모를 합리화하도록 정책당국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예보료 폐지 등 강경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신 회장은 ‘인하’ 쪽에 무게를 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예보료는 금융회사가 고객의 돈(1인당 5,000만원 한도)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해 예금보험공사에 내는 돈이다. 금융업권별로 위험성을 따져 예보료 요율이 책정된다. 시중은행이 0.08%로 가장 낮고 이어 보험·금융투자(0.15%), 저축은행(0.4%) 등의 순이다.
문제는 예보료 체계가 20년이 넘게 그대로 이어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불합리한 것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보업계가 예보료 인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예보료 부과체계가 ‘과잉규제’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보험사들이 예보료로 낸 돈은 7,800억원으로 연간 벌어들이는 당기순이익의 25%에 달한다. 업황 부진에 따라 순이익이 줄어들다 보니 예보료 부담은 5년 새 2배로 커졌다.
더구나 일본처럼 책임준비금의 한도가 없이 일정 비율로 거둬들이다 보니 예보료는 계속 늘고 있다. 생보사 관계자는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22년에는 연간 예보료가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국내 보험사들의 재무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은 건전해 파산이나 지급불능,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데 예보료는 은행보다 2배나 높게 받아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신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RBC 비율을 유럽 수준으로 맞추다 보니 파산 가능성은 더 낮다는 것이다. 보험사 고위관계자는 “유럽 기준에 맞춰 RBC 비율을 맞추기 위해 지금보다 더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익의 25%를 예보료로 내다 보니 이익을 내도 자본금으로 유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본은 확충하라면서도 예보료는 그대로 내야 한다는 것은 보험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더욱이 예보료를 보험료 수입이 아닌 책임준비금 기준으로 부과하고 있어 사실상 중복 부과되고 있다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저축은행업계도 예보료 현실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저축은행업계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거쳐 2015년부터 현재의 79개 체제로 재편성됐다. 저축은행업계는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순익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고정이하여신비율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자본 건전성도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저축은행 잠정실적에 따르면 국내 79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9%(423억원) 증가했다. 총자산은 69조5,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4%(9조8,000억원) 늘었고 자기자본은 7조8,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14.9%(1조원) 증가했다. 총여신 연체율은 4.3%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하락했고 고정이하여신비율도 5.0%로 같은 기간 0.1%포인트 떨어졌다. 저축은행은 최근 4년간 영업실적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는 만큼 업계 최고 수준인 예보료(0.40%)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 초 취임한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은 “당국에 예보료 인하를 적극 건의하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예보료 관리기관인 예금보험공사와 금융당국은 “(예보료 현실화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특정 업권의 예보료를 인하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아직은 부실 우려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감이 커 자칫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 수 있어서다. 업권별 이해관계와 예보료 수준이 천차만별이어서 형평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예보료 인하 문제를 포함해 올해 20년째를 맞은 예금보험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는 TF팀을 만들 예정이다. 하지만 업권 전체가 포함된 TF는 결과를 내는 데 있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민우·유주희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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