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수합병(M&A)을 진행하면서 각별한 애로 사항이 생겼다. 매도자와 매수자의 가격 차이를 좁히는 일이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 은행·증권·보험 등 다수 금융기관의 M&A에 관여해왔다. 물론 M&A 거래에서 양자의 가격 차이를 좁혀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새로운 어려움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거래에서는 입장차가 워낙 커 중재가 더욱 어려웠다. 국내 증시에 상장해 있는 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업종 대표 금융기관의 주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5~0.6배에 형성돼 있다. 반면 매도자의 희망 가격은 PBR 1배 이상이다. 인수 시너지를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양측의 희망 가격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국내 금융기관의 상장 주가가 낮게 형성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필자는 금융기관 간 차별성 없는 서비스, 시장 대비 과도한 경쟁구도, 이에 따른 성장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정책 당국의 정책이 큰 요소라 생각한다. 시장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해당 금융기관의 성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시장이 가치를 부여하는 은행의 성장성은 급격한 대출 증가에 의한 자산 성장이 아니다. 고객의 확장, 즉 사업 지역을 국내로 한정하지 않고 해외로 확장하는 것과 높은 자본비용이 요구되는 대출보다 수수료에 기반한 고객가치를 높이는 자산관리 서비스에 의한 수익 성장일 것이다.
시장이 가치를 부여하는 수익성은 기존에 시도해온 전통적인 방식의 제한적인 원가 절감이 아니라 핀테크 등 디지털 기술에 의한 채널의 혁신, 업무 프로세스 자동화(RPA) 등을 적용한 프로세스의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일 것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해외사업 확대, 자산관리 서비스 확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업무효율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은 국내에서 최고 경영진의 관심도는 높은 데 비해 아직 조직 내에서 체화되는 속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통일에 있어서 도량형의 통일이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중국 대륙을 역사상 처음 통일한 진나라를 이야기할 때 이를 빼놓을 수 없듯이 금융기관의 해외사업 확대 및 자산관리 서비스의 성장에 있어서는 디지털 기술을 선점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진나라에 흡수됐던 주변 제국처럼 디지털화된 국내외 금융기관에 흡수될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디지털 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폭넓게 조직 내에 스며들게 한다면 국내 금융기관이 세계적 금융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조직 역량의 강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특히 M&A를 통해 이러한 변화 유전자를 조직 내에 심을 수 있다면 변화의 속도와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규모의 확대보다는 해외사업 강화, 자산관리 서비스 확대, 디지털 기술 강화 등의 기업 가치 제고를 우선순위에 두고 M&A를 검토해야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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