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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할 때 됐다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영수증 등 구비서류 준비에

금전적·시간적 비용 발생

보험금 청구 전산화 절실

나종연 교수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화제가 됐다가 방송과 뉴스에 보도된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 대구지방노동고용청에서 근무하는 한 사회복무요원에게 3,900건이 넘는 등기우편 발송 내역을 일일이 번호로 조회한 후 출력하는 업무가 주어졌다고 한다. 하루 8시간씩 일할 때 6개월이 걸릴 업무를 이 사회복무요원은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하루 만에 끝내버렸다고 한다. 현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젊은 공학도의 재기 발랄한 업무 효율화 사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자동화와 간소화가 어떠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지능정보기술로 인한 초고속·초연결 사회에서 편리함과 신속함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가치로 대두됐고 소비여정(consumer journey) 전반에 걸쳐 편익을 제고하는 것은 기업들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혁신적 서비스 개발은 모든 산업에서 중요한 화두이고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기술에 친숙해지고 다양한 산업군의 혁신적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빠르게 높아지는데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손의료보험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와 함께’의 조사에 따르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후 빠짐없이 실손보험금을 청구한 비율은 통원치료를 받은 경우 32.1%에 불과했고 입원치료를 받은 경우에도 57.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소비자가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의미다. 건별로 청구를 포기한 실손보험금의 액수는 작을 수 있지만 가입 건수가 3,300만건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다. 특히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로 소액 보험임에도 번거로운 청구 과정과 과다한 서류발급 비용 등을 꼽았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실손의료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상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보험금을 청구해야 한다. 그런데 실손의료보험 청구 시스템은 아직 아날로그 시대를 답습하고 있다. 현재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가입자가 일일이 진료비 영수증, 진료 기록, 보험금 청구서 등을 준비해 고객센터를 방문하거나 우편, 팩스, 인터넷,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보험사에 별도로 제출해야 한다. 이때 관련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추가적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진료 당일 서류를 미처 발급받지 못한 경우 병원을 다시 직접 방문해야 하는 등 금전적·시간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소비자 불만을 유발한다.

현 시스템이 소비자에게만 불편한 것은 아니다. 보험사도 제출받은 서류를 수동으로 검증·분석하고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력과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청구 심사 및 지급 시간이 지연될 수도 있다. 병원의 입장에서도 보험 청구 안내 및 서류발행 업무가 추가적으로 발생하며 서류발행 비용 청구로 소비자의 불만도 높다.

실손의료비 보험금 청구 절차가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도 개선을 권고한 것이 지난 2009년이다. 청구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은 진보하고 있는데 부처 간, 업권 간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해 10년이 지나도 기술이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고 소비자의 피해는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면 이제는 제도 개선을 실행할 시점이다.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는 기존에 이미 갖춰진 수준급의 ICT 제반환경을 활용해 금융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보험 업계, 의료계,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실현해 신기술을 활용한 소비자 편익 제고의 모범사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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