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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혁신금융 비전' 선포] 혁신中企 기술력만 보고 대출해준다

"관행 개선해 벤처에 100조 공급"

증권거래세도 0.05%P 인하키로





부동산담보가 없어 은행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중견·중소기업도 올해부터는 기계·특허권·매출채권 등 유무형의 동산을 한데 묶어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손익과 관계없이 주식 매도액의 0.3%를 일괄 부과해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던 증권거래세도 23년 만에 0.25%로 인하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서울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혁신금융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 분야의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출범 초기 금융을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문 대통령이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금융회사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지며 혁신금융을 위한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의 다양한 동산 자산을 포괄해 한번에 담보물을 평가하고 취득·처분할 수 있는 ‘일괄담보제도’를 연내 도입하기로 했다. 일괄담보가 정착되면 개별 자산일 때보다 집합적으로 평가돼 은행들의 담보 평가도 수월해진다. 부동산담보가 부족해 은행권의 대출을 받지 못했던 중견·중소기업들이 특허권이나 생산설비·매출채권 등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동산담보법 개정을 통해 현재 1조원 미만인 동산담보 신규 공급액을 향후 3년간 6조원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동산담보 활성화를 위해 자영업자에게도 동산담보를 허용하고 현재 5년으로 돼 있는 담보권 존속기한도 없앨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금융관행을 전면적으로 혁신해 혁신·중소기업에 3년간 100조원의 자금이 공급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모험자본 투자 확대와 투자자금의 원활한 회수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안에 코스피·코스닥 및 비상장주식의 증권거래세율을 연내 0.05%포인트 인하하고 코넥스 시장은 0.2%포인트 내린다. 문 대통령은 이날 “그동안 금융에 대해 ‘비 올 때 우산을 걷어간다’는 뼈아픈 비판이 있었다”며 “이제부터는 달라져 ‘비 올 때 우산이 돼주는 따뜻한 금융’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구름 너머에 있는 미래의 햇살까지도 볼 수 있는 혁신금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아마존·페이스북·구글 등 혁신기업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도 부동산담보가 아닌 아이디어나 기술력 같은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야 한다”며 “정부도 금융감독 방식을 혁신 친화적으로 개선해 금융회사가 혁신산업을 적극 지원하며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해당 임직원의 고의, 중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면책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가 21일 내놓은 혁신금융 추진방향은 기존 은행들의 여신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 창업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동안 부동산 담보와 실적 위주의 대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기업금융을 주제로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대체할 동산 일괄 담보제 등 이번 대책을 사실상 금융위가 만들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관련 내용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보수적인 금융 관행을 일시에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 금융위가 이번 혁신금융 세부 과제 가운데 핵심으로 꼽는 일괄 동산담보제도의 경우 현행법 개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는 부동산담보와 재무제표 위주의 기업 여신시스템을 미래 성장성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겠다며 총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첫 단계로 올해까지 동산담보법을 개정해 부동산 담보가 없어도 중소기업들이 특허권이 체화된 화장품 제조기계, 화장품 재고, 매출채권 등 동산자산을 일괄담보화 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어 내년까지 기업 영업력 등 미래 성장성을 파악해 기업을 평가하는 여신시스템을 만들고 2021년까지 기업의 모든 자산과 기술력, 영업력을 종합적으로 따져 대출 승인 여부와 금리를 산정하는 포괄적 상환능력 평가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대책이 현장에 제대로 정착되기까지 여러 난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법 개정이다. 정부가 올해 안에 시행하기로 한 일괄담보제의 경우 동산담보법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협조 없이는 한 발도 나가기 어렵다. 현행 법에는 동산 담보는 기계·재고·채권·지식재산권(IP) 등 각종 동산 자산은 개별적으로만 등기 후 담보 설정이 가능하다. 여러 동산자산을 한 데 모은 집합물을 담보로 묶으려면 동산담보법 상 관련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금융위는 기존의 법인 외에 상호가 등기되지 않은 자영업자에게도 동산담보를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법을 개정해야 한다. 동산 담보의 권리 보호를 위해 동산 담보물의 경매 처분 시 채권자 요구 없이 경매 배당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악의적 훼손·멸실 등의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날 문 대통령이 ‘은행 대출의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평가로 대출 받은 금융’ 등을 언급하며 대책을 마련한 금융위에 힘을 실어줬지만 자칫 법 개정 작업이 삐끗하면 자칫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금융위는 올 상반기까지 법무부와 일괄 담보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마무리 짓고 하반기 안에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도 중소기업의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대통령의 문제 의식은 좋지만 결국엔 국회의 협조 없이는 현장에서 대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동산 자산에 대한 일괄담보제도는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법적 기반이 미흡해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다”며 “그동안 법무부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법 개정 작업을 벌여왔고, 앞으로 중소기업들이 부동산 담보 없이도 훨씬 수월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번 대책의 성패가 법 개정에 달려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보수적인 은행권의 영업 행위와도 관련이 깊다는 지적이다. 은행이 기업 여신을 심사할 때 부동산 담보나 최근 3년 간 실적을 주로 보는 건 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본시장에서 이뤄지는 투자는 모험자본 성격이 커 투자 실패가 용인되지만, 은행권 대출은 한번 잘 못 나가면 은행의 건전성과도 직결된다. 예금자 보호가 최우선인 은행 입장에선 기업 대출 심사가 보수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동산 자산의 경우 가치 평가 전문 인력이 적고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기간도 짧아 대출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렵다. 생산 설비와 같은 유형 동산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특허권이나 매출채권, 영업권 등 무형의 동산은 권리 보호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부실 위험도 그만큼 높다.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보수적인 은행들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줄이고 기업들에게 동산 대출을 늘리라는 정부의 취지엔 동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적극적으로 동산 대출을 확대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는 게 제도 안착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의 관계자는 “신용정보회사들이 산정하는 개인신용등급이 은행권의 신용대출 심사시 주요 지표로 활용되고 있지만 지금의 모습처럼 안착되는데 20년이 걸렸다”면서 “동산담보대출도 서둘지 말고 중장기적인 과제로 한 단계씩 밟아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윤홍우·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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