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의 영향을 받은 인재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몇 차례 기회를 외면한 채 철저한 대응을 하지 않아 화를 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포항 지진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는 지난 2015년 10월 시추 작업 중 진흙물이 대거 유실돼 지진이 발생했을 때다. 시추 시 시추공의 수압을 낮추려 진흙물을 투입하는데 진흙물이 사라졌다는 것은 시추공이 단층대를 건드려 그 틈으로 흘러간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규모 2.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와 2017년 4월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역시 물 주입을 중단하고 정밀검사를 해야 했다고 봤다. 미소지진에 대한 분석이 부실해 단층대에 물을 주입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도 참사를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을 일부 보고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7년 3월16부터 4월14일까지 지하에 물을 주입한 뒤 곧이어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하자 사업단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산업부는 별다른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물 주입은 다시 시작됐고 두 달 뒤 포항 북구에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위기의 징후를 뚜렷하게 인지한 셈이지만 정밀검사 등을 시행하지 않아 화를 부른 셈이다.
근본적으로 지열발전소 부지 선정 과정에서 활성단층을 확인할 검증 절차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한 국립대 지질학 교수는 “사전에 제한된 예산을 갖고 종전에 알지 못했던 단층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포항 지진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조사결과 드러나자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정부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층 커지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21일 시청에서 “산업부의 피해복구 및 지원대책은 포항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정부는 시민들의 재산·정신적 막대한 피해에 대해 실질적이고 신속한 배상을 주도적으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손해배상과 별개로 지열발전소 추진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형사 고발 움직임도 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물을 주입한 다음달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는 등 지열발전소 개발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시공주체를 형사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손해배상 소송 참여 인원은 약 1,400명이지만 추가로 참여하려는 시민이 늘면서 당초 소송인단 목표인원 1만명을 충분히 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항=손성락기자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