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020560)이 감사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감사의견 비적정설’에 휘말리며 22일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관련기사 21면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비적정 의견 상장사가 늘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항공 업계 2위인 아시아나항공이 비적정설에 휘말리며 주식거래가 일시 정지됐다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거래소는 21일 아시아나항공에 ‘회계감사인의 감사의견 비적정(의견거절·부정적·한정)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답변 시한은 다음날인 22일 오후 6시이며 이때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주권 매매거래는 정지된다. 다만 시한 전에 아시아나항공이 답변 공시를 하거나 비적정이 아닌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 매매는 곧바로 재개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현재 회계법인과 감사보고서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개장 전에 소명자료를 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감사의견 비적정설에 휘말린 것은 재무제표상의 회계원칙을 두고 기업과 회계법인이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에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이어지는 회계 논란에 회계법인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 차원에서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아시아나항공 감사에도 브레이크가 걸린 것으로 보인다. 회계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담당 회계법인인 삼일이 한정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정의견은 △감사 범위가 제한을 받거나 △재무제표가 기업 회계원칙에 준거하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감사인이 내는 의견의 하나로 비적정 의견이다. 회계 업계 고위관계자는 “재무상황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정의견을 받는다고 해도 상장에는 문제가 없다. 올해부터 상장사가 의견거절·부정적·한정 등의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아도 곧바로 재감사 요구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다음해 감사의견을 기준으로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높은 차입금에 발목 잡힌 아시아나...회계법인은 몸 사려
그룹 전체 부채비율 354% 달해
재무구조 개선 나섰지만 부족
대조양 사건 이후 잣대 더 깐깐
아시아나항공이 회계법인과 충돌하며 감사의견 비적정설에 휩싸인 것은 높은 차입금 비율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매출액 9조7,835억원, 영업이익 2,814억원을 거두며 견실한 경영실적을 이어갔다. 문제는 견조한 경영실적에도 경영에 위협이 되는 차입금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그룹 사옥과 CJ대한통운 주식 매각,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상장을 통해 그룹 전체 부채비율 354%를 달성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포인트 떨어뜨린 성과다. 하지만 차입금의 규모는 여전히 크다. 지난해 기준 3조9,521억원이다. 높은 경영성과를 통해 1조2,000억원가량 감축했지만 시장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아쉬웠다.
감사보고서 제출기한을 하루 앞두고 한국거래소가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풍문 공시를 한 것도 재무 사정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채무비율에 대한 적정한 감사의견이 나오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회계가 시장이 허용할 범위를 넘어섰고 부채 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앞서 자체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영구채, 계열사 상장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 최근 30년 만기인 1,5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자본으로 채워지는 영구채가 적격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지난해 말 700억원 규모의 보유주식을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할 만큼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크다. 금호고속의 상장을 고민하는 것은 그룹의 재무구조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364.3%에 달한다. 2017년 대비 30%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차입금만 3조9,521억원대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광화문 사옥을 도이치자산운용에 4,100억원에 매각했으며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도 상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주사인 금호고속 상장을 통해 자금 융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호고속이 상장되면 공모 과정에서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매각할 수 있고 주식담보대출을 통해도 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의 주식거래가 재개된 후에 다퉈야 할 문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회계법인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했고 이에 대한 그룹 차원의 의견도 없다”며 “금융당국의 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감사의견 비적정설로 기업과 회계법인의 충돌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영업정지를 당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논란으로 관련 회계법인들이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회계법인들은 더 깐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감사의견을 받지 못해 상장폐지 대상이 된 곳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라이트론이 회계법인 감사의견을 받지 못해 상장폐지 대상이 됐다. KD건설과 크로바하이텍은 각각 감사의견 거절과 한정을 받았다.
코스닥 기업의 일인 줄 알았던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이 대기업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20일 한화는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을 공시했다. 장 마감 후 제출했지만 한화그룹 모회사인 한화의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은 충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을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는 한화를 비롯해 금호전기·인지컨트롤스·한솔홈데코·웰바이오텍·해태제과식품·디와이·우진아이엔에스·컨버즈·에스엘·동양물산기업 등 11개사다. 코스닥은 차바이오텍·엘아이에스·동양피엔에프·퓨전데이타·이건홀딩스·에이앤티앤·솔루에타 등 12개사다.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 속출은 예상됐던 일이라는 게 회계 업계의 전언이다. 회계 업계 관계자는 “외감법 강화로 자료 요구가 늘어나고 실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회사 측에 감사보고서를 지연 제출하는 외부감사인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조양준·구경우·박시진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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