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동안 ‘취포자’로 지냈던 대학원생 시절의 이야기다. 하숙집 방구석에 누워 있는데 교수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취직 안 하고 뭐하냐, 네가 학교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 인턴 자리라도 알아봐 줄 테니 일단 취직부터 해라.”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는 말에 감사하기는커녕 화부터 났다. 졸업생 취업률을 올려야 하니 일단 단기 일자리라도 얻으라는 것이다. 학생의 미래나 꿈은 뒷전이고 당장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고 보겠다는 일종의 ‘취업 분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교수의 처지도 이해는 된다. 학교 측에서 요구하는 취업률을 맞추려다 보니 그런 ‘꼼수’라도 동원해야 나중에 정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학교 측도 취업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인턴’으로 들어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학교 취업률을 높이는 데는 일조했겠지만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더 좋은 취업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15년이나 지난 옛일을 언급하는 것은 최근 ‘고용통계’ 때문이다. 지난 2월 취업자 증가가 1년여 만에 20만명을 넘어섰지만 주로 정부 예산으로 억지로 만든 노인·단기 일자리다.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가 늘었다지만 사회복지 분야와 공공기관 채용이 늘면서 ‘취포자’들이 잠깐이나마 입사원서를 냈기 때문이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임시 취업을 한 것에 불과하다. 학생을 일단 억지로 취업시켜 취업률을 높이려 한 학교와 현 정부를 매치시키면 정부가 ‘마중물 일자리’라 부르는 억지 일자리가 민생 현장에서 어떤 양태로 발현되는지 알 수 있다.
정부가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다고 한다. 미세먼지 추경은 명분이고 경제살리기, 그중에서도 일자리 늘리기에 상당 부분의 혈세가 투입될 것이다. 추경편성 소식이 들리자마자 일선 부처는 일자리 할당에 대비해 폐비닐 줍기, 해외파견 청년인턴 등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한다. ‘마중물 일자리’가 일자리 분식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제대로 된 일자리 만들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해 추경에서 입증됐다. 이번 추경은 조금이나마 다르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