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73.84%(9천484만4천611주 중 7천4만946주)가 표결에 참여했다.
이목이 쏠린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09%, 반대 35.91%로 부결됐다. 가결 정수인 66.66%에 2.5% 모자른 지분으로 조 회장은 사내이사직을 상실하게 됐다.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이다.
이를 두고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자본시장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 주주권 행사가 강화됨에 따라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에 제한을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현재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조 회장의 연임안 부결은 전날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는 전날 회의에서 조 회장 연임안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와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등 해외 공적 연기금도 연임안에 반대를 권고한 것도 외국인·기관·소액주주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인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 주식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 33.35%, 국민연금 11.56%, 외국인 주주 20.50%, 기타 주주는 34.59% 등으로 구성된다.
한편 조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부촌 뉴포트비치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에서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조 회장은 건강상 문제로 별장에 머물고 있으며, 언제 귀국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은 LA 현지에 파견된 대한항공 임직원 중 핵심 임원들을 통해 국내 상황을 보고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날 조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책을 숙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조 회장 거취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조 회장이 머무는 별장은 조 회장이 2008년 593만 달러(한화 67억3천만원 상당)에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별장 구입 자금의 3분의 2가량은 은행융자로, 나머지는 국내에서 외화반출 신고를 거쳐 현지로 조달한 것이다.
현지 부동산업체인 ‘레드핀 에스테이트’ 홈페이지에 따르면 조 회장의 별장으로 추정되는 저택의 시세는 711만~786만 달러(80억7,000만~89억2,000만 원)에 달한다. 조 회장의 별장은 수영장이 딸린 고급 빌라 형태다.
저택에는 프렌치 도어와 아치형 장식이 있고 지중해식 스타일로 설계된 것으로 현지 부동산업체 정보에는 나와있다. 또 조 회장 별장과 인근 저택들은 대부분 첨단 보안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편 지난해에는 조 회장 일가가 이곳 별장에 고가의 가구를 들여놓는 과정에서 미국 세관 당국에 관세를 내지 않고 밀반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항공 측은 별장에 비치된 가구류는 현지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화 인턴기자 hbshin120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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