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편성 준비가 한창인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물으면 “검토하고 있으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적절한 시점에 발표할 것”이라는 공통된 답변이 돌아온다. 경제 사령탑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준 이상의 설명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당 내에서 10조원 규모라고 언급을 해도,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내총생산(GDP)의 0.5%를 넘는 9조원 규모로 권고해도 기재부는 추경 편성방향·규모·재원조달 등에 대해 조심스러운 스탠스를 고수하고 있다. 올해 470조원의 ‘슈퍼예산’에다 5년 연속 추경을 할 정도로 연례행사가 됐고 지난해 추경이 실제 재정투입 효과가 미진했던 만큼 신중한 결정을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 중국 충칭에서 기자들과 만나 추경 규모에 대해 “써야 할 곳은 있지만 재원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IMF에서 권고한 수준까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언급했다. 정부에서 처음 나온 추경 가이드라인이 홍 경제부총리가 아닌 이 총리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해 25조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했어도 사실상 가용 재원이 없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폭을 확대하느냐에 대한 정책 결정에 앞서 정부 스스로 한계를 씌워버린 셈이다.
경기 상황을 보자. 수출은 4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고 생산·소비·투자 지표는 모두 떨어졌다. 제조업 가동률과 재고는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 직전이다. 글로벌 경기의 하강 우려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확대재정이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더라도(2009년 28조원 규모의 ‘슈퍼추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솔직한 진단을 내놓고 과감하게 ‘컨틴전시 플랜’으로 대응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지난 2013년 기재부가 부총리 부처로 승격돼 다섯 번째 수장을 맞이했어도 한국 경제호의 컨트롤타워 역할보다는 ‘패싱’ 논란만 빈번히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청와대 또는 국회가 만들었건 ‘그립(grip)’을 쥐고 ‘미스터 쓴소리’를 하는 홍 부총리의 모습은 과한 기대일까. 올해 추경 발표를 기점으로 경제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야전사령관다운 면모를 보고 싶다.
/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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