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에 이어 반도체·자동차 등 국내 주력 산업들이 고전하면서 투자를 주저하는 바람에 기업들의 은행 여신액 증가율이 1·4분기 기준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채 등 시장성 차입을 늘린 영향도 있지만 경영 예측 불확실성이 점점 고조되자 투자 계획을 조정하면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면서 경기하강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7일 서울경제가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1·4분기 말 기업여신 잔액을 집계한 결과 407조2,678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5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1·4분기만 기준으로 보면 지난 2016년 증가율 1.04%를 기록한 후 가장 낮은 수치다.
4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여신만 놓고 보면 증가율은 5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4분기 4대 은행의 대기업 여신잔액은 64조3,300억원으로 올 들어 0.18% 감소했다. 4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여신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2017년 4·4분기 이후 처음이다.
시중은행의 기업여신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된 것은 기업들이 실적 악화에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다 보니 하청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도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은행 여신 수요의 감소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실제 SK와 LG 등이 비교적 큰 폭으로 투자를 늘렸지만 2017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던 삼성이 투자 숨 고르기에 나서면서 전체적으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60개 대기업집단 계열사 가운데 2018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855개 기업의 투자 지출액을 분석한 결과 총 98조5,365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의 101조6,379억원보다 3.1%(3조1,014억원) 줄어든 수치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 46곳의 투자 지출액은 총 28조4,718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9조8,685억원(25.7%)이나 감소했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은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대출 수요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라며 “올해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은행들로서는 우량기업 대출 위주로 영업을 해야 하는데 우량기업들의 현금 수요가 바닥을 치면서 (기업대출) 영업 환경도 녹록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은행의 기업여신 증가가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기업들의 투자 기피 현상이 고착화되면 일자리 감소 등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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