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들어서야 돈을 웬만큼 등한시해도 좋을 형편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의 오랜 시기를 나는 애틋한 그리움으로 회상한다. 그때는 돈이 있으면 다행이었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든 헤쳐 나갔다. 세상을 탐색하고, 지평을 넓히고, 지리멸렬을 피할 수만 있으면 나는 간도 크게 금전적 문제를 건너뛰었다. 행복한 젊은 날이 오래도 갔다. (중략) 나는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결핍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돈을 중심에 갖다놓으면서 돈이 근심거리가 된다고 곧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궁극의 사치는 고급 승용차나 호화로운 자택이나 별장이 아니라, 공부하는 삶을 나이 들어서까지 연장할 수 있는 가망이라고 본다. 공부하는 삶이란 일상의 즉흥, 정처 없는 거리 산책 취향, 카페에서 죽치기, 초연함의 과시, 명예와 직책과 흐르는 세월을 피하려 주렁주렁 몸에 휘감는 상징적 패물에 무관심한 태도를 의미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신작 ‘돈의 지혜’의 서문에서 돈이 없었던 젊은 시절을 비롯해 돈 걱정에서 자유로워진 중년 이후의 삶을 돌아보며 이같이 돈의 의미를 성찰했다. 브뤼크네르는 ‘순진함의 유혹’으로 1955년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서문의 내용은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이 느낄 ‘성찰의 압축판’일지도 모른다. “돈을 잊어버릴 만큼 부유했던 적도 없고, 돈을 멸시할 만큼 가난했던 적도 없다”고 말하는 그의 성찰과 통찰은 그래서 돈 때문에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매 순간 조율해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지혜로 다가온다. 특히 그가 전하는 돈에 대한 지혜는 지적이고 우아하다. 재치와 위트가 넘치며 책의 모든 문장은 아포리즘(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또 화려하고 유려한 글이 주는 피곤함이 그의 글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흔을 넘긴 노(老) 작가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돈을 혐오하는 사람이 속으로는 오히려 돈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부끄럽지 않게 에둘러 지적함으로써 독자에게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정화하게 만든다.
‘돈의 지혜’는 철학, 경제학, 인문학을 넘나드는 글쓰기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딱 파스칼의 책’이다. 그는 경제학 에세이 ‘번영의 비참’으로 2002년 프랑스 최우수 경제학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작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할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경제만능주의”라고 지적했고, ‘돈의 지혜’에서는 돈 자체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모든 종류의 지식과 학문, 문학 등을 동원해 꿰뚫었다. 성경을 비롯해 단테의 ‘신곡’,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이 말하는 돈에 대한 의미부터, ‘20유로 지폐는 잘만 쓰면서 100유로 지폐는 왜 깨기 아까워하는가’하는 질문까지를 ‘은행권의 현상학’으로 풀어냈다. 또 ‘금수저 정자클럽’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 글에서는 그만의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돈에 대한 해석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그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 밖에는 수고한 것이 없는 미국의 상속자들과, 인간과 신의 관계를 아무리 애써도 원금을 돌려줄 수 없는 거래 관계에 비유한 ‘천로역정’ 등에 대해 살핀다.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상관이 없을 만큼 각 장은 독립적이며 돈에 대한 깊은 통찰이 빼곡하다.
그렇다면 브뤼크네르가 말하려는 ‘돈의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책의 결론 부분인 ‘감당해야 할 정신분열’에서 그는 “정신의 삶에는 소박한 안락으로 족하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운을 뗐다. 돈의 지혜는 자유, 안전, 적당한 무관심이라는 세 가지 덕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며 이 세 가지 덕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정직, 비례, 나눔이라는 세 가지 의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분열적일 수 밖에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돈을 신성시하지 말 것, 지나치게 사랑하지도 말고 혐오하지도 말 것, 이것이 지혜다. 돈의 죄는 불공평한 분배뿐이다. 재산은 결국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무너지기 쉬운 생의 메타포일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떠날 수 있음을 받아들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먹먹하게 감사하라. 이것이 궁극의 지혜일지니.” 1만6,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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