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싯다르타 랄 CEO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볼까요(안 궁금하시면 바이크+헬멧 사진 나올때까지 쭉 스크롤하신 다음부터 읽으시길).
랄 CEO는 기업인 3세입니다. 할아버지인 만 모한 랄이 1948년 아이셔그룹의 모태인 ‘굿어스’를 설립해 트랙터 수입 사업을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독일 아이셔 그룹과 합작해 트랙터 생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아이셔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구요. 그리고 아버지인 비크람 랄이 1960년대 경영을 이어받아 트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1990년에는 경영난에 허덕이던 로얄엔필드를 인수했습니다. 당시 로얄엔필드는 이미 인도에서만 생산이 이뤄지고 있던 상황이었죠. 이후에도 쉽사리 적자가 개선되지 않아 1990년대 말 아이셔에서도 매각을 검토했지만, 당시 영국에서 학업(자동차공학)을 마치고 돌아온 싯다르타 랄이 결사반대(?)했다고 합니다. 2014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내게 가장 소중한(close to my heart)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네요. 18살 때 아버지로부터 로얄엔필드 바이크 한 대를 선물받고 바이크 사랑을 키워왔다 합니다. 투자자, 애널리스트들을 위한 연간 사업보고서에도 바이크 재킷 입고 찍은 사진을 썼다니 알 만 합니다.
2000년 싯다르타 랄은 로얄엔필드 CEO로 취임하게 되고, 로얄엔필드의 실적을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로얄엔필드의 판매량은 연 2만4,000대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연 82만대(이 중 인도 내 판매량 79만대)를 기록했습니다. 싯다르타 랄 CEO는 지난 2006년부터는 아이셔 자동차 CEO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이셔는 상용차 회사인 만큼 타타그룹 같은 인도의 승용차 회사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지만, 자동차 사업으로 매출 2조원 정도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이크, 소비재 등의 그룹 내 다른 사업까지 합치면 더 큰 규모겠죠?
사실 마음 같아선 로얄엔필드 브랜드의 역사까지 정리해드리고 싶습니다만…그러자면 거의 책 한 권이 나올 판이므로 겨울쯤으로 미뤄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쓰는 저나 읽는 독자분이나 서로 편하게, 존댓말은 빼고 Q&A 형식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별표(*)는 저의 별볼일 없는 코멘트이기 때문에 빼고 읽으셔도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읽어주시면 존경하겠습니다.
Q.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브랜드지만 ‘정통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영국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인도기업이다. 정통성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A. 로얄엔필드와 인도의 관계는 1955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인도 육군이 히말라야 국경 경비용 로얄엔필드 ‘불렛’ 모델을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턴 영국에서 부품을 조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불렛350을 만들게 됐다. 이후 로얄엔필드는 1980년대부터 일본 바이크 브랜드들의 공습으로 경쟁에서 밀렸고, 결국 아이셔그룹이 로얄엔필드를 인수했다.
인수 당시에도 일본 브랜드들과의 경쟁은 어렵다고 판단, 일본이 우위를 점한 저배기량 대신 미들급에 집중했다. 요즘 레트로 바이크가 인기를 끌면서 다른 브랜드들도 다양한 모델을 내놨지만 우리만큼 진짜배기는 아니다(They‘re less authentic). 지금 와서 보면 로얄엔필드는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인도에서 성장했고, 그리고 지금도 일부 R&D 등은 영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재밌지 않나.
(*아무래도 로얄엔필드 하면 영국의 이미지가 강해서 던져본 우문이었는데, 어떤 브랜드라도 긴 역사를 쌓아나가면서 시대와 시장에 맞춰 변화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로 답해줬습니다. 인터뷰 시점은 시승 전날이었지만 시승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로얄엔필드에 대한 애정이 +10 되는 현답이었습니다.)
Q. 로얄엔필드의 시장 목표와 전략은.
A. 250~700cc 미들급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 미들급 바이크 시장이 현재 150만대 규모에 불과하지만 10, 15년 후엔 500만~1,000만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태국, 브라질 등의 바이크 시장은 지금까지는 저배기량 위주지만 소득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미들급 이상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인도네시아 기자에게 물어봤더니, 인도네시아의 연간 바이크 판매량만 백만 대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10배 수준입니다.)
로얄엔필드는 주로 신흥국에서 250㏄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라이더들을 겨냥할 것이다. 저배기 모델은 대당 마진보다는 판매 수량 자체를 늘리는 전략을, 고배기량은 판매량이 적지만 고마진을 취하는 전략이다. 미들급의 경우 판매량도 마진율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던 클래식을 지향하는 브랜드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바이크가 최고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트윈스에 들어간 슬리퍼클러치처럼 우리 제품에 필요하다 싶은 기술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Q. 트윈스(인터셉터 650&컨티넨탈GT)의 개발과정에서 기계적 완성도, 감성 중 어느 쪽에 더 초점을 맞췄나.
A. 일단 감성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 어떤 주행감과 디자인을 원하느냐는 결국 감성과 연관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술(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 결국 감성과 기술이 밀접하게 결합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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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전 모델들의 내구성, 품질 문제가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나.
A. 지난 10여년 동안 정말 많이 투자하고 개선했다. 우직하게 R&D에 투자했고, 트윈스 같은 경우 이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100만㎞ 이상 주행 테스트를 거쳤다. 그리고 일본식의 초기품질관리를 도입했다. 일본 UD트럭 품질관리부문장 출신의 일본인 엔지니어를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고, 우리의 품질관리 스승이 되어줬다.
생산 과정에도 물론 많이 투자했다. 두카티 등 전세계 바이크 브랜드의 프레임을 제작하는 태국 ‘타이서밋’이 트윈스의 프레임 전량을 제작했고, 도장(페인팅)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독일 기술을 적용했으며 생산시설도 한국의 두산 제품을 포함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운용하고 있다.
트윈스는 개발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그리고 한정된 인력과 자본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전세계에서 똑같은 스펙으로 생산·판매한다.
Q. 당신의 ‘꿈의 바이크’, 드림 머신은 무엇인가.
A. 인터셉터다. 이런 바이크를 오랫동안 꿈꿨지만 만들 능력이 없었는데 10년 동안 투자해서 만들어냈다. 크롬으로 커스텀한 인터셉터를 거주지인 런던에서 타고 다닐 생각이다.
Q.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어떤 전략인가.
A. 한국 시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크진 않지만 아주 영향력이 큰 시장이다. 두 나라에서 잘 팔리는 바이크는 다른 동남아 시장에서도 잘 될 것으로 본다. 다행히 이번에 한국에서 좋은 수입사와 손잡게 됐고, 안정적이고 강한 판매망을 활용할 계획이다.
Q. 로얄엔필드의 다음 라인업은 언제 나오나.
A. 스크램블러 같은 모델도 만들고 싶지만 앞으로 1년 간은 유로5 규제에 맞추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2020년 하반기쯤 새 모델이 나올 예정이다.
정리하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물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본업이 경제지 기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국내외 CEO들 많이 만나봤는데요. 인간적인 호감을 주는 CEO, 똑똑한 CEO, 성실한 CEO, 인맥 좋고 정치 잘하는 CEO 등등 대체로 뭐 하나씩은 장점을 갖춘 사람들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봐도 랄 CEO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롸이더끼리는 시스털&브롸덜이기 때문일까요?
오늘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쓰면서 즐거웠던 만큼 독자분들도 즐거우셨길 바랄 따름(제발 플리즈)입니다. 다음 번 두유바이크로 다시 만나요!
/푸켓=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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