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대국’ 이스라엘의 창업은 대부분 ‘신기술’에서 비롯된다. 탄탄한 기초과학 바탕 위에 발굴된 원천기술을 응용해 창업으로 이어진다. 기초과학이 실험실을 뚫고 나와 ‘시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7년 인텔이 150억달러(약 17조원)에 인수합병(M&A)한 이스라엘 자율주행자 핵심부품 업체 ‘모빌아이’는 암논 샤슈아 등 히브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들이 1999년 설립한 회사다. 연구 논문 속에 잠들어 있던 기술이 대학의 창업 인큐베이터를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실험실 창업’의 성공은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연방정부는 국립과학재단(NSF)을 통해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할 때 학술연구를 넘어 사업화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I-Corps)을 운영한다. 기초과학의 연구 성과가 실험실에 갇혀 잠자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초과학의 환경은 어떨까. 대학 내 교수 승진이나 정부 R&D 개발 과제를 받을 때 여전히 연구 논문의 비중이 높다. 교수가 자신의 연구 성과에 기반한 스타트업을 세우면 순수 학문이 아닌 돈벌이에 매몰됐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연구 성과는 ‘논문을 위한 논문’으로 그치고 연구자는 실험실 붙박이 신세가 되고 만다. 연구자가 마음껏 연구하고 얻은 성과를 산업화로 유도할 토양을 만드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오는 5월14∼16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열릴 서울포럼2019 ‘다시 기초과학: 대한민국 혁신성장 플랫폼’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포럼 이튿날인 16일 열릴 세션2에서는 ‘사업화 없는 R&D는 허상이다’라는 주제로 페레츠 라비 테크니온공대 총장이 이스라엘이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불리게 된 배경과 실험실 창업이 뿌리내린 테크니온공대의 산업화 성공 노하우 등에 대해 설명한다. 수면의학의 창시자인 라비 총장도 실험실을 뛰쳐나온 과학자 중 하나로 꼽힌다. 이스라엘 연구개발국(EMET) 의학 부문(2016년) 수상을 포함해 다수의 상을 받은 기초과학자인 그는 수면제 및 심장질환 치료용 의료기기를 개발·생산하고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5개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라비 총장에 이어 올해 3월 취임한 이공계 출신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한국 기초과학 사업화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대학 연구기관이 정부 또는 기업과 어떻게 효과적으로 손을 맞잡아 협력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진단한다. 세션2의 마지막은 찰스 리 잭슨랩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이 기업과 대학이 함께하는 R&D 클러스터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제언할 예정이다.
마지막 세션은 창조성의 명저인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간주립대 생리학과 교수를 강연자로 초빙했다. 다빈치에서 파이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열세 가지 생각의 도구를 담아낸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생각의 탄생’은 2007년 발간 이후 13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주지 않을 정도의 명저로 꼽히며 다수의 유명인사가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으로 꼽는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기초과학의 ‘창의’와 ‘소통’에 대해 말한다. ‘갇힌 과학’이 아닌 ‘열린 과학’이 기초과학이 혁신성장으로 진화할 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세션3에서는 ‘칸막이를 허물어라-창의와 소통’이라는 주제로 과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역할과 인문·과학적 소양을 겸비한 ‘융합 과학형 인재’ 양성을 위해 필요한 교육 해법 등에 대해 고민한다.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과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고 누구나 과학을 즐겁게 접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언스(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대거 연사와 토론자로 참여한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생각의 전환이 이끌어낸 과학 발전의 사례를 통해 과학의 미래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오늘날 여러 매체의 발달로 수동적 정보 획득에 익숙하거나 부와 사회적 계층에 따라 상상력을 키울 기회가 다르게 주어지는 경향도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문화·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기조강연에서 기초과학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준 카를로 로벨리 엑스마르세유대 이론물리학센터 양자중력연구소장도 전날 기조강연에 이어 또 한번 자리를 빛낸다. 그는 공간과 시간의 양자적 본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을 등장시켜 세계를 들여다보고 이해시키는 융합형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분자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칸 국제광고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한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연구단장은 양자과학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을지,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미디어 등 각종 장치를 활용해 과학과 대중의 장벽을 허무는 효과적인 소통방법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해외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상욱 럿거스대 교수와 서은숙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이 한국을 등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환경은 무엇인지, 창의력 육성 등과 관련해 한국 과학교육 시스템에서 보완돼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를 강연할 예정이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