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만난 일본 기업인들에게 ‘정부가 인프라를 쏘면 기업은 따라가는 패키지 딜’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 기업들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죠.”
베트남 현지에서 일하는 기업인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지원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수출구조 다변화를 위해 ‘신남방정책’을 앞세우고 있다지만 기업의 체감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이퐁에서 근무하는 한 기업 관계자가 “베트남 현지에서 신남방정책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이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6~2017년 베트남에 대한 ODA 금액 순위에서 일본은 14억8,700만달러(약 1조7,000억원)로 압도적인 1위를 점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ODA 규모는 1억8,700만달러(약 2,130억원)에 불과했다. 일본의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4조9,719억달러로 한국(1조6,194억달러)의 약 3배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8배의 ODA 규모 격차는 크다.
일본 정부의 자금력으로 생긴 인프라는 고스란히 일본 기업의 혜택으로 돌아간다. 현재 국민 대다수가 오토바이를 운전해 도로 교통이 열악한 베트남에서 지하철 사업에 돈을 대고 있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호찌민 지하철 1호선 건설에만 약 24조원을 투입했고 하노이 지하철 1·2호선 건설 또한 지원하고 있다. 지하철 건설이 완료된 후 역세권 개발 사업은 일본 기업과 베트남 현지 건설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호찌민의 금싸라기 땅’ 투티엠 지역 개발이 시작된 것도 일본 차관으로 건설한 하저터널 덕분이었다. 투티엠은 호찌민 도심인 1군 지역 코앞이면서도 사이공강 건너편에 있어 오랫동안 낙후된 상태였다. 과거 투티엠 거주민들은 도심으로 이동하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일본은 그런 투티엠과 도심지를 10분 거리로 잇는 하저터널 건설에 차관을 지원했고 이것이 개발에 물꼬를 틔우는 계기가 됐다.
도로나 다리를 건설해주면 접근성 좋은 공장은 자연스레 일본 기업이 선점한다. 실제 일본 기업은 하노이에서 가장 가까운 10분 거리 공단에 입주한 반면 삼성전자(박닌)는 1시간 거리, LG전자(하이퐁)와 현대차(닌빈)는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는 베트남 현지 인재를 유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현지에서 만난 베트남인 구직자는 “베트남에서 삼성전자는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연봉을 주지만 박닌이 너무 시골이라 가기 꺼려진다”고 했다.
기업에 애로사항이 생겼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 대한 아쉬움도 들린다. 베트남 정부가 매년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벌이는 세무조사는 현지 진출 기업들의 대표적 고민거리다. 통상 세무조사는 3~5년에 한 번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베트남 정부는 일종의 ‘외국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세무조사를 활용하는 셈이다. 호찌민의 한 기업 관계자는 “베트남 법이 굉장히 불명확한 면이 있어서 아무리 국제 회계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일을 진행해도 세무국에서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면서 “소송을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긴다 해도 과정이 번거롭고 힘든데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서 투자를 주도하더라도 정부의 전략이 부족한 탓에 실속을 충분히 챙기지 못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하노이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우리가 현지에서 사업을 따내더라도 협력업체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결국은 베트남 업체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투자는 한국 기업이 했는데 실익은 현지 기업들이 다 가져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의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이 장기적인 외교 리스크가 될 수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베트남을 찾아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 불행한 역사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베트남은 경제 발전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우선시해 이 문제의 표면화 자체를 꺼린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베트남에서 만난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당시 현지 언론에서는 해당 발언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면서 “지금 베트남은 사과를 바라는 것이 아닌데 시기상조였다”고 평가했다.
/호찌민=박효정기자 하노이=고병기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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