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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마음의 문 닫은 아이들, 성악으로 세상과 만나는 것 보면 뿌듯"

■ 발달장애 학생 성악가로 키우는 부부 성악가 윤혁진·김은정

"고집 센 아이 공연하게 도와달라"

자폐장애 2급 레슨이 첫 출발점

보통 학생보다 몇배 힘들었지만

1년 지나가니 소리 서서히 달라져

'아 이렇게 아이가 성장 하는구나'

시간 걸리지만 하면 된다는 확신

장애 청소년 6명으로 만들어진

미라클보이스앙상블 합창단 운영

전문가들도 줄 수 없었던 감동에

연주무대 오를때마다 관객들 울음

성악가로 살아갈 발판 될 예술단

장애인 전문음악학교 만드는게 꿈

장애 청소년들을 성악가로 키우는 윤혁진·김은정 부부 성악가./성형주기자




“지난해부터 장애 청소년으로 구성한 성악 앙상블이 이리저리 연주(노래)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연주하면 관객들이 그냥 우는 거예요. 보통 성악가들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연하는 게 쉽지 않아요. 애처로운 것도 있었겠지만 전문가들이 줄 수 없었던 새로운 감성이 관객들에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의 바리톤 윤혁진 베아오페라예술원 교수와 소프라노 김은정 교사 부부가 발달장애·자폐 청소년들을 성악예술가로 가르치고 있어 화제다. 일반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쉽지 않은데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을 예술가로 가르친다는 것은 당연히 훨씬 더 어렵다. 장애 학생 본인은 물론 선생님도 수십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청중의 반응이 뜨겁고 아이들의 장애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일 ‘장애인의날’을 앞두고 서울 광진구 미라클아트홀에서 성악 레슨을 지도하고 있는 윤·김 부부 성악가를 최근 만났다.

윤혁진 김은정 성악가 부부.


윤 교수가 장애 청소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한민국예술사랑이라는 모임에서 성악 공연을 하러 간 게 계기가 됐다. 1919년 3월1일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을 낭독하신 정재용 의사의 증손자인 정연재군의 아버지를 그곳에서 만난 것이다. 공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고집이 아주 센 아이인데 일본에 가서 연주할 일이 생겼습니다. 도와줄 수 있습니까.” 당시 삼육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정군의 첫 레슨이 시작됐다. 그런데 레슨 중에 정군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게 아닌가. 정군은 윤 교수와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레슨 후 함께 왔던 정군의 어머니가 지하철역까지 윤 교수를 태워준다고 해서 차에 탔는데 신호등에 차가 멈추자 정군이 문을 열고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레슨도 싫었고 함께 차를 탄 것도 싫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윤 교수가 거절할까 봐 자폐장애 2급이라는 얘기를 정군의 아버지가 해주지 않은 것이다. 몇 달간 레슨을 지도하니 너무 힘들었다. 시작 자체를 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정군의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노래를 할 아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에게도 이 학문은 너무 어렵습니다.”

정군의 어머니는 너무 죄송하다면서도 간절히 부탁했다. “너무 폐쇄된 아이니 노래라도 하면서 한 시간만 같이 보내주세요. 노래는 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윤 교수는 보통 아이들 교육 때보다 몇 배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데려오면 억지로라도 한 시간 동안 주 1회 레슨을 지도했다. 1년이 지나니 소리가 서서히 나왔고, 눈도 맞추기 시작했고, 마음을 열었다. “아, 이게 변하는 거구나. 단지 시간이 더 걸릴 뿐이구나. 하면 되는구나.”

윤 교수도 정군도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러던 중 정군의 어머니가 다른 장애 아이를 소개해줬다. 이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고등학교 2학년 최문영군이었다. 최군은 가진 소리가 탁월했다. 정군과 함께 레슨을 받았지만 역시 처음 1년은 무척 힘들어했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 아이들의 실력이 부쩍 늘었다. 최군은 이후 전국 장애인 콩쿠르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대회에 나갈 때마다 대상·최우수상·우수상 등을 받아왔다. “이 아이들을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테크닉은 비장애인보다 부족하고 향상 속도도 느리지만 하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더 열심히 했습니다.”

장애 청소년들을 성악가로 키우는 윤혁진·김은정 부부 성악가./성형주기자


레슨을 받는 장애 학생이 한 명 더 생겼다. 발달장애 1급이지만 가진 목소리는 더 좋았다. 레슨 학생이 늘어나다 보니 서울에 정착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윤 교수는 그동안 가족을 대구에 두고 서울의 교회나 공기관에서 레슨을 지도하다 주말에 돌아가곤 했다. 마침 부인이 이탈리아에서 성악과 뮤직테라피(음악치료)를 공부한 후 돌아와 대구에서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있었는데, 서울로 합류해 학생 어머니들의 도움으로 서울 광진구 장애인연대에서 수업을 맡게 됐다. 윤·김 부부는 대구 계명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결혼한 후 아이를 한 명 둔 상태에서 이탈리아 성악 유학을 떠났었다. 오페라 하면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밀라노베르디음악원에서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유학생활은 동양인에 대한 무시와 경제적 궁핍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걸핏하면 ‘차이니즈’라고 무시당했고 유로화가 생긴 후에는 환율 폭등으로 쪼들려 살았다. “12년간의 유학생활 중 5년간은 난민생활을 했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한국인 대상 비즈니스 민박도 6년간 했습니다. 열흘 정도 입에 단내가 날 만큼 일해서 한 달 먹고살고 공부하고, 일자리를 위해 동유럽 극장까지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레슨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이 어려운 유학생활을 견뎌내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낮은 자세 때문일 것이라고 윤 교수는 회고했다. 장애 청소년들은 레슨 선생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학생이 장애인인 것을 알면 선생님들이 대부분 레슨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면서 연주할 기회도 많아졌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5·18평화음악회,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된 한중무역박람회 초청 음악회,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장애인문화예술축제 초청공연 등 공연 때마다 관객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이 운다. 지적 수준이 일반인과 다른데도 어떻게 외국 노래를 외우고 리듬을 익혀서 부르는지에 대한 애처로움과 감동이 섞였을 것이라고 윤 교수는 지레짐작했다. “쟤네들이 무슨 장애인이냐”는 감탄도 나왔다.

장애 청소년들을 성악가로 키우는 윤혁진·김은정 부부 성악가./성형주기자


지난해 12월 초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연대 1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장애 청소년 6명이 ‘푸니쿨리 푸니쿨라’ ‘넬라판타지아’를 합창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집사람과 저, 아이들 어머님들이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본격적인 장애인 연주자로, 장애인 문화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자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장애 청소년들에 대한 레슨이 늘어나고 평창대관령음악제와 교류하다가 발달장애인 6명으로 구성된 중창단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을 지난해 3월 만들었다. 한 명씩 공연할 때보다 여럿이 하면 파워와 감동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도 자립할 수 있구나. 서울시립합창단·국립합창단이 있듯이 우리도 만들어보자. 장애 아이들이 예술가로 노래하면서, 사회에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할 수 있는 예술단체를 만들어보자. 그게 미라클보이스앙상블입니다.”

발달장애나 자폐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성악을 하게 되면 장애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부인 김 교사는 “자폐 아이들은 대화를 나누거나 사람들과 섞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졌다”며 “눈도 안 맞추던 애들이 말이 많아지고 성격도 활발해졌다”고 전했다. 엄마가 데려다 주지 않으면 레슨을 오지 않던 아이가 지금은 혼자 와서 몇 시간씩 연습을 하다가 간다고 한다. 정군의 경우 미라클앙상블 단장으로서 동생들을 챙기고 손님이 오면 인사를 시키는 등 리더십이 부쩍 생겼다. 먼저 익힌 학생들은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CTS기독교TV cts홀에서 ‘내가매일기쁘게’ 프로그램 녹화방송을 촬영할 때 함께한 미라클앙상블 단원과 윤혁진교수. 왼쪽부터 정연재군, 윤 교수, 김동우군, 한준용군, 김성은양, 최문영군.


부부에게는 이제 꿈이 생겼다. 장애 아이들의 미래, 아이들이 먹고살아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 것이다. 앙상블팀으로 공연을 하고, 많지는 않더라도 대가를 받고 장애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돈은 적게 받더라도 시립합창단·시립국악단처럼 장애인합창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 교사는 “시립장애인합창단이 생긴다면 세계 최초이고, 전 세계에서 견학하러 올 것”이라며 “장애인들을 그렇게 대우한다는 것 자체가 국위선양이고 최고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나 자폐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악을 가르치는 전문음악학교를 만드는 꿈도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대체로 입시에서 장애 학생 한 명을 받는데 피아노·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 전공자들이 있어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장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성악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도 없다.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음악학교가 생기고 학사 학위까지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학위를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원하면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윤혁진 교수가 정연재군에게 성악을 가르치고 있다.


윤 교수는 “장애 아이들을 가르친 게 5년 차인데 장애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사회적 책임을 느꼈다”며 “이 책임을 어떻게 현실화시켜나갈 것인지를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발달장애인문화예술컨텐츠개발원’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청각장애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자폐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있는데 발달장애 아이는 커서 뭔가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범죄도 많다고 한다.

장애 아이들과 관련된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제대로 된 장소가 필요했다. 레슨을 하면서 언제든지 마음대로 연주도 할 수 있고 연구기획도 할 수 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문화공간으로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 지난해 말 군자아트센터가 매물로 나와 관계자들이 힘을 모아 인수하게 됐다. 50~60평 규모로, 지하 1~2층 공간을 통합해 무대로 사용하거나 레슨을 하고 지상 1층에는 발달장애인문화예술컨텐츠개발원 사무실을 뒀다. 미라클아트홀이다. 윤 교수 부부는 이곳에서 현재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미라클앙상블 단원 6명 외에 예비단원 2명, 지방의 발달장애 학생 1명, 비장애 대학생 3명 정도를 가르치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1973년 대구

△계명대 음악대학·대학원 성악과 졸업

△밀라노베르디국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수석졸업 및 예술가곡과정 졸업

△파바로티국제콩쿠르 2위

△밀라노 음악학교 협력교수 3년

△라트라비아타 등 유럽 주요 극장에서 활동

△2015년 대한민국 사회공헌상 대상 수상



△2018년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특별상 수상

△현 베아오페라예술원 교수, 미라클아트홀·문화예술기획 대표, 아르텔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동조합 이사장

She is…

△1971년 부산

△계명대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밀라노베르디국립음악원 수료

△밀라노시립음악원 성악과·예술가곡과 졸업

△밀라노도니제티음악원 성악·음악치료 졸업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주역 출연 및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 이태리 순회 연주 협연

△정동고등학교 음악교사

△현 광진구 장애인센터 음악치료사 성악강사, 미라클보이스앙상블 음악감독, 선화예고 강사

스승과 눈도 안맞추던 제자…이젠 ‘투우사의 노래’ 부르는 바리톤

■윤교수 부부 첫 제자 정연재군

낯가림 없애려 놀이도 식사도 함께

어느새 웃기 시작하고 말도 받아쳐

외국말 가사 외우려 끊임없이 반복

최근 3년간 40번이상 공연장 올라

정연재 군.


“무대에 선 후 사람들로부터 받은 칭찬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방방곡곡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정연재(26)군은 불편한 몸으로 성악을 공연하는 데 대한 소감을 묻자 짧은 말로 끊어서 답변했다. 그는 아스퍼거증후군을 앓는 자폐성장애 2급의 젊은이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언어 및 인지발달은 정상적이지만 운동기능의 발달지체로 정서적·사회적 발달이 늦어지는 장애다. 윤혁진 교수로부터 레슨을 받아 성악가로 무대에 오른 첫 번째 제자다. 의사전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 이은형씨 등 가족과 함께 스피커 폰으로 최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오페라곡 및 가곡) 30곡가량을 부를 수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입니다.” 카르멘은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가 쓴 원작 소설을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가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노래는 프랑스어로 돼 있다.

그는 교회에서 노래봉사에 참여하고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어 성악을 배우게 됐다. 성악을 전공하면서 윤 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비유적인 표현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아랫배에 힘을 주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실제로 아랫배를 누르면서 변을 볼 때처럼 힘을 주라고 해야 이해를 한다. 수많은 반복훈련만이 답이었다. 외국말로 된 가사를 외우기 위해 스무 번 이상 반복했다 .

새 선생님을 만나면 낯을 많이 가린다. 처음 볼 때는 참을 수 없어 뛰쳐나가려 하거나 피가 나도록 손톱을 깨물곤 했다고 한다. 교수님이 밥도 사주고, 좋아하는 것을 주고, 함께 놀러 가기도 하면서 자신에게 해가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다음부터 웃기 시작하고, 말을 받아치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무대에는 최근 3년간 40번 정도 올랐다. 삼육대에서 성악을 4년, 사회복지를 2년가량 공부해 지난해 졸업했다.

정연재 군과 정군의 어머니.


어머니 이씨는 아들의 사회성이 떨어져 늘 혼자만 있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연재가 성악을 하면서 칭찬을 듣고 축하를 받다 보니 사회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미술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었지만 사회성을 길러주는 게 더 중요해 성악을 하게 했어요. 미술은 도화지와 자기 둘 사이에 이뤄지지만 음악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고 관객도 있거든요.” 어머니는 정군이 미술을 잊도록 관련 도구를 감춰버리기도 했다.

정군은 적지 않은 곡을 노래하고 즐기지만 여전히 독창을 하는 데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독창을 앞두고는 며칠 전부터 밥도 잘 안 먹는다고 한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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