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의 단체급식 업체인 A사는 올해 초 경남 지역 소규모 사업장 두 곳과의 재계약을 잇따라 포기했다. 해당 사업장 모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게 됐다”며 급식단가 인하와 함께 석식을 없애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사는 인건비 부담과 원재료 상승 등 경영여건 악화로 급식단가를 올려도 모자랄 판에 석식까지 빼달라는 고객사의 요구를 “지금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해당 사업장에서 자진 철수했다. 2면으로 계속
대표적 노동집약 산업인 단체급식 업계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불어나는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급식사업장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 사업장이 우선 철수 대상이지만 수익성 악화가 계속될 경우 일부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발을 빼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급식 업체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료 준비와 세척·배식 등 조리 전후 과정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품질미달·저가경쟁 제살 깎아먹기
영세사업장 단가 낮춰 위생도 비상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단체급식 업계 1위인 삼성웰스토리는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1,031억원으로 전년(1,150억원) 대비 10.3%나 감소했다. 2위 업체인 아워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건비 부담으로 실적악화=아워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7.8% 늘어난 1조6,686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7.3%나 급락하며 641억원에 머물렀다. 아워홈 관계자는 “1만2,000여명의 임직원 가운데 현장직 근로자가 70%에 달하는데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지난해 노무비가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급식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한 것은 전처리와 배식·세척 등 조리를 제외한 급식과정 전반을 돕는 ‘조리원’들의 인건비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조리사나 영양사와 달리 무기계약직이거나 파견직 소속 신분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1시간가량의 짧은 식사시간에 많게는 수만명분의 식사를 차질 없이 제공해야 하는 단체급식의 특성상 보통 100인분 기준으로 조리원 1명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한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수백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털어놓았다. 한 급식 업체 관계자는 “2018년도 최저임금 인상 당시 인건비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영업이익의 30~40%가량에서 차질이 발생한 데 이어 올해부터 급식업에도 주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면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급식단가도 올려야 하지만 고객사와의 조율이 쉽지 않아 부담은 결국 급식 업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토로했다.
유통기한 임박한 식재료 활용땐
고스란히 급식 이용자에 손해만
수익 적신호에 자동화설비 가속
◇영세사업장, 사업장 단가 낮춰 위생에 적신호=문제는 이처럼 낮은 단가로 계약이 계속 이어질 경우 위생과 안전을 제대로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기업 계열의 한 급식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식재료 검수를 철저히 하고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보상해주지만 지역의 영세 업체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단가를 맞추기 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를 싸게 구매하거나 재활용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손해는 고스란히 급식 이용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남의 조선소 협력업체에 이어 자동차부품 협력사와 단체급식 재계약을 맺지 않은 A사를 대신해 단체급식을 맡게 된 곳은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케이터링 업체였다.
◇약속한 품질 못 맞추는 저가경쟁=이 같은 저가경쟁은 결국 급식 업계의 제 살 깎아 먹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급식 업체 관계자는 “급식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공격적으로 수주하는 업체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실제로 한 업체는 골프장 클럽하우스의 레스토랑을 수주했는데 약속한 품질을 맞추지 못해 다른 업체에 빼앗기고 업계에서 평판만 안 좋아졌다”고 지적했다.
◇속도 더 내는 자동화설비 개발=수익성에 적신호가 켜진 급식 업체들은 운영 효율화를 위한 자동화설비 개발에 더욱 적극적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해부터 전담팀을 두고 세 공정의 속도를 높일 방안을 집중 연구해 이용객에게 자동으로 밥과 국을 제공하는 ‘디스펜서’를 개발했다. 잔반 분리부터 세척과 정리까지 전반을 자동화하는 기계도 개발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아워홈은 지난해 자동 잔반처리기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는 배식 자동화설비 도입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앙주방시스템(CK)에서 생산하는 반조리 제품 사용량을 현재 80여개 품목에서 내년까지 150여개 품목으로 두 배가량 늘릴 계획이다. CJ프레시웨이는 올해 병원 식당에 반찬을 중심으로 한 CK 상품을 선보이고 다른 경로로 확대한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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